죽음을 기준으로 한 나의 삶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인간은 태어난 순간을 기억하지 못 한다. 그저 부모가 남긴 사진이나 진술에 의해 출생의 과정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대체로 어느 병원에서 태어났으며 진통시간이 얼마나 소요된 끝에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태어났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없다. 엄마, 아빠의 섹스 끝에 '나'는 태어난 것이고,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주었든, 하나님이 예정해 두었든, 아니면, 단순히 DNA와 각종 단백질간의 결합에 의해 '나'가 존재적 의미를 가졌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일 따름이다.


어쨌든 태어났으니 삶이라는 것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삶이란 무엇일까. 무척이나 철학적이고 고전적이며 근본적인 질문이다. 나는 소크라테스나 공자, 맹자, 예수, 석가가 아니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무어라 명백한 답을 낼 수는 없다.


그런데, 2년전에 뇌척추동맥박리로 쓰러진 적이 있다. 자칫 식물인간이 될 뻔한 순간이었는데, 운좋게 살아가고 있다. 물론, 무수한 약을 먹는다. 중요한 사실은 출생의 신비한 경험은 기억하지 못 하지만, 죽을 수 있다는 사실, 죽음이 내 인생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점은 명백하다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오늘,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너나 나나 구별없이 죽음은 공평하게 서서히 또는 숨가쁘게 닥칠 수 있는 사건이다. 죽음을 두고 생각해 보면 삶의 의미를 얼추 추정할 수 있다. 삶에서 어떤 지위를 추구할 것인지, 얼마의 돈을 축적해야 속이 시원할 것인지, 아이들 교육을 잘 시켜서 자식농사를 성공적으로 결실을 보아야 할 것인지 등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가 구속되어 붙잡고 살아가는 요소들이지만, 나의 죽음 앞에서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었는지, 지인들의 부모나 장인, 장모가 유명을 달리 하였다는 소식을 접한다. 불과 십수년 전에는 결혼하거나 돌잔치한다는 연락을 자주 받았는데 지금은 죽음의 소식을 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여전히 오늘, 내일 당장 닥칠 사건이 아니라는 지배적인 생각 때문에 우리는 순간을 스쳐보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하더라도 나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절감하지 못 한다. 그리고, 진실로 이기적으로 평가하자면 나의 부모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슬프기는 하겠지만, 나의 죽음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죽음은 끝이다. 생물학적인 기능의 정지이자, 사회적 관계의 마침이다. 하지만, 종교적 관점에서는 업보의 순환에 휘말리거나 지옥이나 천국으로서의 티켓을 어떻게 부여받는지의 문제이다.


이상한 점은 녹초가 될 정도로 죽을만큼 일하더라도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몸에 고장이 나고, 특정한 진단을 받게 된다. 사실 내가 그러했다. 뇌척추동맥박리가 되면서 나는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공황증상을 겪고 있다. 일을 많이 하거나 상담을 많이 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약물을 복용해서 그 순간을 최면한다. 그리고 또다시 일을 한다. 나는 의사가 아니라 변호사이기 때문에 삶의 문제, 법률적 얽힘을 풀어야 한다. 해답을 찾을 때까지 머리는 쉬지 않는다. 자다가 자꾸 깨어난다. 변호사 생활을 한지 12년차 이건만, 일과 개인적인 생활의 모드전환이 여전히 순탄치가 않다.


죽음이 예정된 날을 알 수 있기만 하다면 삶의 태도를 순식간에 변경할 수 있을텐데,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을 정리할 수도, 박차고 나아가기도 망설여진다. 언젠가 죽겠지만, 그래도 일기의 끝을 마무리하듯 정리하고 죽는다면 그보다 더 한 행복이 있을까 한다. 비명횡사한다면 너무나 아쉬울 듯 하다. 죽고 나면 아쉬움조차 느낄 수 없겠지만, 잔존 인간관계에 끼칠 영향이 적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염사실을 인식하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삶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을까. 갑자기 암이나 심각한 정신적 질병을 진단받은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그 반대편에 있는 죽음의 의미를 깊이있게 고민해서 자신의 삶의 태도를 정리할 수 있었을까.


죽음을 기준으로 내 삶을 돌아보면 환원주의(쉽게 말해 단순화하기)에 입각해 삶의 의미는 단순해 진다. 삶은 유의미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좀더 연장되었으면 하는 바램의 연속일 뿐이다. 지금 바로, 즉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끝마쳐야 한다. 그것만이 진실로 죽음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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