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지금으로부터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인간은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지능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적인 분쟁과 문제에 대해 합리적 해결방안을 깨달았고, 전쟁과 분쟁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다만, 인간의 지능이 최극대로 진화함으로써 모든 질병의 발생과 치료에 대해 방법을 구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신의 존재와 부존재에 대해서는 해결하지 못 했지만, 신의 필요성, 기도의 절박함은 가치가 희소해졌다.
인간은 발달된 지능으로 인해 노화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고전적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다 같이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사람들은 지능이 고도로 발달된 상태로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가진 이기심은 인간의 불운의 근본적인 감정임을 깨달았다. 인간은 고도화된 지적 평준화로 인해 서로가 양보하고 화해하며,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대해 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노화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행복한(?)' 사회생활을 유지해 나갔다.
특히, 인간은 인생을 낭비하게 만드는 '잠', '수면'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다. 더 이상 잠을 자지 않아도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좀더 생산적이며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공유하게 되었다. 어차피 잠을 자더라도 노화의 비밀을 풀었으니 수면시간으로 인한 인생의 낭비 따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에게 병적인 상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했다.
무의식으로 인한 광기나 의식적인 이성간의 혼란스러운 문제는 장기간 주어진 수명연장으로 더 이상 문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프로이트나 융 등의 고전적인 문제제기는 더 이상 화두가 아니다. 인간은 발달된 지적 능력으로 지구 환경을 개선하고, 인구를 조절하면서 만물의 영장을 연장했다.
바야흐로 유토피아가 도래했다. 하지만, 고도화된 지적 능력의 평준화 문제가 도덕적, 윤리적, 공동선의 추구라는 인간의 본성까지 개조하지는 못 했다. 주어진 수명연장에 대한 식상이 발생하고, 일부 인간들이 탈선을 한다. 그 탈선이라 함은 고리타분한 오르가즘 따위가 아니라 초감각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질병도 없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사회에서 단조롭고, 무료함에 탈선하는 일부 인간들이 규율을 깨는데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죽음을 목격한지 너무 오래 되었고, 누구나 죽음이 먼 미래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여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A가 B를 감금해 서서히 죽인다. B는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A는 반신적인 존재감을 느낀다. 평준화된 고도적 지능에서 신적인 존재감은 제외되어 있었다. 서로가 같이 오래오래 살 궁리만 했지, 자신이 타인을 지배하고, 그 생명의 단추를 OFF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쳐 못 하다가 탈선한 일부 인간들이 죽음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시간은 많고, 먹고 사는데 절박하지 않으니 심심하기 짝이 없는 유토피아가 무료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어차피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한 번 죽임을 맛 보니 신적인 존재감을 느낀다. 신은 죽지 않으면서 피조물을 사멸시킬 수 있다. 지적 능력이 고도화된 인간이 언젠가는 죽겠지만 오래도록 살아가는 유토피아에서 신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신의 감정을 탐하기 시작한다. 살인은 지극한 쾌감을 준다. A는 이를 C, D, F 등에게 전달한다. A: "내가 B를 죽였는데, 죽을 때까지 나에게 살려달라고 하더군, 나는 서서히 그의 죽음을 봤는데, 처음엔 애처로웠는데, 동맥을 잘라서 그런지 알아서 죽더군. 그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지. 나는 신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네"
이런 비정상적인 쾌감은 유토피아적인 세상에서 기이한 감정이고 경험일 것인데, 바이러스처럼 점차 퍼진다.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그것도 쾌감을 위해서. 유토피아는 문제가 가급적 없는 세상이었는데, 고도화된 지적능력의 평준화 인간 중 일부가 탈선을 해서 질서를 무너뜨린다. 고도화된 지적 능력이 인간의 본성까지 개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유토피아의 지도자들은 다시금 노화의 비밀을 후대에 전달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모든 질병의 예방과 치료법에 대해 불사질러 없애 버렸다. 인간의 수명은 점차 단축되고, 질병으로 죽어가는 인간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염병으로 상당수가 죽어나갔다.
A는 더 이상 살인의 쾌감을 단절했다. 하지만, 이제 질병으로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불사지른 치료법만 있었더라면 더 살수 있었을텐데.
과거에 유토피아가 존재했을 수 있다. 다만, 인간의 수명이 너무 짧은 나머지 그것이 그것이었는지 인지하지 못 했다. 그리고, 유토피아를 꿈꾼다. 사실 유토피아가 실현될 수도 있다. 우리의 전두엽은 점차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가 실현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유토피아에 만족하지 못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지루함에 대한 인내가 없고, 파괴적 본능과 위험을 초래할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천년만년 살아가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처벌이다.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현실이 생존함에 대한 증거일 수 있다. 착각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현실에 대한 감사가 더 유토피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