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y essay

자유민주주의의 딜레마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민주주의는 '국민의 정부'를 실현하는 정치체제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이 주인인 정치체제인데 현실은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 어떤 국가든, 조직이든 권력배분에 있어 균등비율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현대사회에 들어서 지도자를 선택하는 선거형 민주주의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민주주의라고 일컫기도 하면서 사실상 독재인 권위적 민주주의이도 현존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개인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을 최고선으로 삼는 이데올로기이다.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경쟁에서 승리자가 모든 것을 쟁취할 수 있으며, 패배자에 대한 배려는 호혜적인 것이 아닌 이상 제도적이라고 볼 수 없고, 국가의 개입은 최소한인 것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했다. 그런데, 사회주의에서 주장하는 자본주의 체계 자체의 모순,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의 문제에 대해 지적이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폭력을 통한 목적달성을 위해 선전과 선동, 그리고 전쟁까지 발발하자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도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험, 연금제도, 임금상승과 노동시간의 단축, 사장과 노동에 대한 가격협상을 위한 단체행동권을 법적 관계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복지와 분배에 대해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순수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에 수정을 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론적 수정은 하지 않았고, 단지 정책적 변경과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 사이에 폭력은 수반하지 않았다. 물론, 과격한 시위, 노동쟁의, 파업이 있었기는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의 그 '폭력'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다수의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노동계급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고수한 주된 이유는 자본주의가 가진 사회적 증진의 힘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특정 수준의 이기적 욕심이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배달해 줄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사회주의는 자본의 사회귀속을 원하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한 번이라도 맛 본 사람들에게서 이기적 욕심을 빼앗아 갈 수는 없었다.


자본주의의 체계적 모순과 자본가 VS 노동계급간의 갈등과 투쟁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로 귀결된다는 이론은 역사적으로 오류임이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사회주의를 원하는 세력들이 있다.


노동조합, 노총의 지도자들은 실제 노동자의 고통을 그만큼 느끼지 못 하거나 아예 알지 못 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파업을 조장하는 지도층은 별단의 목적을 위해 노동자들을 선동하지만 사실 노동자의 고통을 같은 크기로 절감하거나 고통의 구체적 내용을 알지 못 한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계급 자체 내에서도 계급이 생겨 버린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최대한의 자유보장과 평행선을 달려야 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사회주의자들은 계속해서 민주주의를 사회주의실현의 수단으로 여기고 이를 이용한다. 민주주의 내에서도 특정 계급에 의한 지배를 원하지 않지만, 계급 자체를 사실상 부인하지는 않는다.


알다 시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서는 극도의 파레토 법칙이 현실화되었다. 사회주의를 원하는 세력은 장기적이고, 권위적인 권력의 향유, 그리고, 적당한 하향평준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내심 품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지켜져 온 가치이고, 사회주의는 우리가 선택하고자 했던 것이 결코 아니다. 누가 중국식 사회주의라고 하던데, 중국은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그렇다고 자본주의 아닌 뒤죽박죽이면서 일부 계급만 살찌우는 권력의 기괴한 변태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중국식의 통제체계현상, 사회주의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이는 위헌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사회주의적 요소를 헌법에 삽입하고자 한다면 정말이지 그네들은 '빨갱이'라고 불리는 누명의 실체가 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탈선적인 소수자의 사회적 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