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y essay

고유명사의 망각과 인식에 이르는 과정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사랑이 야속한 것이 아니라 세월이 야속하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 "까먹는다", "깜빡한다", "분명히 알았는데 그게 뭐였더라!" 등등의 표현을 하게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론적으로 이해를 완전히 한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론적 이해를 했다는 것은 "꿰뚫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이해로 얻은 지식, 정보는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시간을 두고 거슬러 연상을 하면 이해한 내용을 상기할 수 있다.


문제는 이론적 이유나 인과관계가 없는 명사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상기의 문제이다. 실례로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내셔널 트레져', '노잉' 등에 출연하고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남자배우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었고, 그 사실도 알고 있었으나 "그 누구냐~~~~"하면서 좀처럼 기억으로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름은 고유명사이다. 고유명사는 특별한 이유없이 특정인, 특정사물에 명명된 것이기 때문에 "생"으로 외우지 않는 이상 이해할 대상이 아니다. 물론, 고유명사가 그렇게 명명된 유래, 연유 등은 있을 수 있지만, 여하튼 고유명사는 외우지 않으면 재차 기억에서 끄집어 낼 수 없다.


그 남자배우 이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분명한 진실은 내가 알고 있었고, 여전히 나의 뇌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케서방이라고 불렀었는데, ~~". "더글라스 페이지", "니콜라스 페이지" 등등 입가에서 맴돌고 머리에 떠 오르는 이름들이 정답이 아니다. "분명 마구 질러댄 몇가지 이름과 비슷한 그 무엇일텐데 말이다.


아! 맞어! 니콜라스 케이지!

수없이 틀린 이름을 연상하다가 어느 순간 배우이름이 정확하게 생각난다. 속이 후련하다. 다만, 너무 시간을 지체했고, 그 이름을 기억해서 대화해야 하는 순간은 이미 지나버리고 말았다. 세월이 약속하기만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 지고 있음일 것이다.


고유명사(넓게는 보통명사)의 망각은 흔히 있는 일이라고 위로하고 싶다. 하지만, 시험을 치룰 때, 제 시간 내에 그것이 연상되지 않으면 점수를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간지로운 지점을 제외하고 계속 주위를 긁어대다가 보면 정확히 간지러운 지점을 찾게 된다.


망각한 고유명사를 기억하는데 짧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몇일 후에 문득 생각날 수도 있다. '망각-연상'이 어떻게든 연결되면 충분한 경우가 있고, 시험이나 면접상황처럼 제 때 연상되지 않으면 곤란한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 고유명사가 여전히 머리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고, 그것을 빼내어 표현할 수 있지만, 때로는 시간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고유명사가 자주 망각되는 일로 건망증에 걸렸다거나 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계속 긁다가 제대로 가려운 부분을 긁을 수 있다면 시간이 좀 소요되더라도 건망증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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