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사업가는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정치적 사업가는 선거에서의 승리와 최대한의 권력획득과 유지에 관심을 가진다.
글을 쓰면서 아름답고 도덕적인 결론을 내는 그런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너무나 가식적이고 개인적으로도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업가는 국민 전체와 경제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를 개선하는 것처럼 선전한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 결코 전체적이며 보편적인 균질화에 관심이 없다. 자신들에게 표를 몰아 줄 특정이익집단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고자 한다. 때로는 자기네들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만들려고 현시적인 명분을 내세운다.
국민들은 분명 "우리"(우매하고 단순하며 감정적이고 편파적이며 제 스스로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보통의 우리)를 위해 정치인들이 일해 줄 것을 믿고 소득에서 강제로 세금을 서슴없이 내어준다. 사실, 세금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돼지고기 사먹을 것을, 소고기를 사먹을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변호사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나는 위에서 말한 "우리" 중 하나이지 합리적 이성으로 똘똘 뭉쳐져 있지도 않다. 대부분의 결정은 직관과 감정에 의존한다. 나의 머리 속에 있는 잡다한 지식들은 내 삶의 크고 작은 선택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 한다.
우리는 언젠가 정치적 사업가, 진정한 지도자가 아닌 집단들 때문에 고생을 사서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앞으로도 그런 결과의 초래는 반복적이 될 것이다. 정치적 사업가는 진실로 국가와 전체의 발전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 길을 지도에서 삭제한다.
"타다" VS "택시". 택시의 불편함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특히, 강남에서 연말에 택시를 타려면 따블의 요금을 지급하겠다면 손가락을 두 개 펼치거나 합승에 대해 포괄적 승낙을 해야 한다. "타다"의 표는 가변적이다. "타다"의 소비자들이 여당 지지자만이 아니라 야당 지지자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택시"의 표는 확실히 그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한, 확정성에 가까운 보험이 된다. 그래서 여당은 "타다"를 족치고, "택시"를 지켜준다.
정치인, 지도자는 십자가를 지고 국가적 운명을 위해 희생을 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만족과 행복, 자족과 향유는 촉각을 둔화시키고, 자신의 육감적인 만족에 집중한 나머지 국민들의 고통이나 불편함의 해소에 관심을 덜 가질 수 밖에 없다. 배부른 돼지가 죽음을 감지하지 못 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면 비약일까.
정치인, 지도자는 가급적 최대한 불행해야 한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전체를 위해 바치기로 약속했으므로 자기 이익과 편의를 충족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너무 야박한가. 하지만,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정치적 사업가들이 난무하는 시기, 국제적 추세이다. 그들은 국민들, "우리"를 위해 일할 것처럼 행동하지만, 자기 새끼들을 좋은 직장에 꽂아주고, 고급정보를 통해 주식이나 부동산을 매입하며 굶주리는 사회의 낙오자들을 위해 보편적 복지를 행하는 것으로 중간에 끼어 대다수인 "우리"를 기만한다. 가난하고 낙오한 자들에 대한 배려는 어느 국가, 어느 시대, 어는 정치인들이나 다 할 수 있는 조치이다. 정치적 사업가의 개인 재산으로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중간에 끼어있는 "우리"에게서 세금을 떼어가고 결국은 "우리" 중 단체행동을 하거나 표를 몰아줄 것을 장담하는 특정이익집단에게만 정치적 사업가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그냥 살아가는 "우리"의 대다수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책을 내놓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표가 유동적이기 때문에 선거시즌이 임박해서 관심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낙오자도 아니고, 실패자도 아니어서 기초수급연금을 받지 못 하면서 세금을 모기의 빨대에 의해 빨래키는 대다수들. 정치적 사업가들이 4년 또는 5년 중 선거기간 동안 관심을 가지는 대상인 "우리". 우리는 정말로 햄버거 속에 섞여 있는 배추(먹다가 튀어나온 배추를 다시 집어먹지는 않는다. 패티면 모를까)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지적 능력이 있고, 무시할 수 없는 소득활동을 하면서도 정치적 사업가들의 관심에서 배제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나는 정치꾼들, 정치적 사업가, 정치가 자기들의 생계유지(대부분의 정치적 사업가는 생계유지를 세비로 유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돈은 넉넉히 있는 인간들이 정치를 하기 때문)나 명예, 권력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간 부류를 혐오한다.
우리는 정치적 사업가들을 정치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생계 때문에, 또는 앞서 말한 직관과 무관심, 합리적 이성의 유지부족 때문에 정치적 사업가들을 축출해 내는 문제에 대해 망각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