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면 건강과 몸매를 챙기고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그에 반해 포근한 이불 속에서 단잠을 자는 다른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한번쯤 들어 봤음직한 경제이론들도 특정시점의 특정 경제상태를 속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못 할 뿐더러 미래예측 역시 보기 좋게 틀린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애 관련해 단순히 수요와 공급, 도표화되거나 산술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오히려 심리적, 정치적, 도덕적 요소들과 맞물리거나 별거하거나 하는 식으로 굴러 가는 듯 하다. 전쟁, 전염병, 사회 전반적 대중의 심리 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어휘가 부족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어느 한 순간에 특정한 공간에 존재하고, 그것들이 이어져서 삶이라는 형태를 만들어 내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 속으로 사라진다. 완전히 사멸하는 것은 아니고, 기억이나 사진, 저장매체에 일부가 고정핀에 의해 특정될 수는 있어도 결코 그 순간의 그 느낌은 분명 저 과거의 파도 속으로 사멸한다.
하지만, 기회비용은 언제나 적용되고 우리가 기회비용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만은 공통된 진실인 듯 하다. 특정 순간, 특정 느낌, 특정 생각 속에서 우리가 선택한 결정과 행동에 따르면 선택에서 제외된 또 다른 즐거움은 그 순간으로 회귀해서 재선택할 수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후회라는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인 정신적 상태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회비용보다 선택한 그 무엇인가의 즐거움이 커야 한다. 때로는 증명될 수 있고, 때로는 대충 감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선택이 기회비용의 최소화이기를 바란다.
부모가 되면 많은 기회비용을 계산없이 계산한다. 나는 가급적 싼 옷을 입더라도 아이들에게는 고급진 옷을 입히고 싶어진다. 부모의 새크리파이스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기회비용의 계산적 측면에서는 비합리적이다.
기회비용만큼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며 지속적인 경제이론은 없다. 그리고, 시대와 상황과 국적을 떠나 기회비용의 문제는 지극히 공통적이며 일반적이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했다면 기회비용의 문제가 발생한다. 쉼의 즐거움과 능동적인 행위로 얻을 즐거움 간에 계산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주어진다.
우리는 이익이 비용을 초과할 때까지 기회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어느 순간이 이익이 손해와 이퀄이 될지를 말이다. 기회비용은 감정적인 측면에서 후회이고, 도덕적 관념에서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 경제적 관점에서는 냉정하다.
다시금 기회비용은 그 개념이 탄생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일관하는 경제이론이다. 다른 경제이론은 실생활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지만, 기회비용은 언제나 영원한 진리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