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y essay

끝없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완벽한 선(善)이라고 자평할 수 없지만 비교적 선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목표이자 계획이다. 물론, 근원적으로 악하고, 순간적으로 악한 인간들의 악행을 종종 목격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악이고 보통 사람들인 우리 자신에게 경악과 멸시를 불러일으킬 뿐, 우리는 여전히 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측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뜻하지 않은 고통들이 주어진다. 자녀를 잃거나 건강을 잃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실직하거나 실연하거나 불합격하거나 승진에 실패하거나 등등 갖가지 헤아릴 수 없는 문제와 고통이 간헐적이거나 지속적으로 찾아온다. 고통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며 전혀 원하던 상황이 아님에도 현실화된다.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다소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지극히 현실적으로 찾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해답을 찾지 못 하고, 세월을 무기력하게 흘려 보내야 할 때도 있다.


우리는 뜨거운 찻잔을 무심결에 만졌다가 열기에 손을 댄다. 그러면, 그 통증경험이 뇌에 쌓여 다시는 찻잔을 함부러 만지지 않는다. 통증은 위험에 대한 경고이고, 생존을 위한 경고메세지이다. 고통을 통해 지혜를 얻고 위험을 모면하게 생명을 존속할 수 있다.


고통은 때로 반대되는 욕망간의 충돌에 의해서 발생한다. 돈, 지위상승, 선한 삶의 지속, 고통으로부터의 회피 등의 욕망이 홀로 부려질 때는 고통이 없겠지만,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갈등, 시기, 이기심, 과욕 등과 충돌하게 된다. 다행히 투쟁에서 승리한다면 고통스럽지 않겠지만 경쟁에서 실패하면 고통이 저절로 찾아온다.


고통은 때로 나와 전혀 무관한 '악한 자'에 의해, '자비로운 신의 부재'로 발생하기도 한다. 욕망의 충돌결과 패배에서 오는 고통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고통이 발생되어 쓰나미처럼 오는 것이다. 선하게 살아온 인생 전반에 대한 후회와 '신'에 대한 원망, 아무것도 주지 않고 앗아가는 '세상'을 향해 울부짖게 만드는 고통이다. 이러한 고통은 지혜와 경험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왜?,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발생하느냐 말이다.


내적인, 정신적인, 영적인 훈련을 통해 보다 철학적이고 지적 존재로 변화하기 위해 주어진 고통이라고 하기에는 이해할 수도 하기도 싫은 고통은 분명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주님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시험을 주지 않으신다"고 하였는데,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주어진 것으로 보아 주님의 부재를 원망해야 할지, 이 혼란스러운 고통 뒤에 있는 주님의 뜻을 알려고 애써 고통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고통은 어떤 종류이든, 어떤 통증이건 간에 숨이 붙어있는 한 분리할 수 없는 그림자처럼 삶의 일부이다. 가능하면 짧게 슬퍼하고 아파해야 한다. 생존하는 사람에게는 생존의 이유가 있고, 그 이유의 뒷면에는 고통이 있는 법이다. 자연의 섭리이든, 신의 섭리이든, 악한 자의 악행이든, 자초한 것이든 고통을 삶의 일부로 여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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