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애를 써도 고통만 쌓여갈 뿐...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본 것을 못 본 척 한다'. 여기서 흘려보내고 못 본 척 하는 것은 잊고 싶은 것들, 혐오스럽거나 짜증나는 것들,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 등등 부정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잊어버린 것', '잊었다고 의도적으로 생각하는 것', 망각의 영역에 버려두거나 버린 것들은 분명히 부정적인 것, 고통스러운 것들이다. 쾌감을 주고 삶에 기쁨을 주는 사건과 경험을 우리는 오래 기억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무엇에 쓰려고 사진, 동영상을 찍고, 플랫폼에 올리겠는가. 결코 부정적인 느낌과 기억, 고통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 두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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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잊어버리고 싶은 것을 잊었다거나 망각했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상태에 두려면 또 다른 에너지의 소모가 필요하다. 망각의 대상을 기억 저편과 마음의 저편으로 내몰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으로 양적으로, 물리적으로 충당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다.


저절로, 스스로 망각된다면 그야말로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모순적인 뇌와 마음은 정답은 망각하는 경우가 많으면서 망각되어야 마땅한 것들은 싫은데도 자꾸 되내이게 만든다.


한 번 오감으로 겪은 것은 결코 우리 몸과 마음, 정신에서 빠져 나가는 법이 없다. 어딘가에 숨어서 축적되고 있다. 그게 어딘지 알면 좋을테지만, 우리 몸과 마음, 정신의 어느 지점에 '난지도(쓰레기 적치장이었다가 지금의 하늘공원)'가 위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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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내면 이렇다. 부정적이고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경험에 의해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소모를 1회 당했다. 그런데, 그것을 추방하거나 망각하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소모를 2회 당한다. '2회 당한다'는 표현이 피동적이기는 하지만, 능동적 자주적으로 망각을 위해 노력을 하는 수 없이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런 식으로 부르기로 한다.


망각의 대상은 본질적으로 '고통'이다. 어떤 식으로든 기분나쁜 경험이기 때문에 잊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이다. 추억은 기분좋으니까 자주 꺼내 회상하는 것이니까 별다른 증거없이 인정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서 고통을, 기분나쁜 경험을 저 '난지도'로 보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에너지 소모를 최소한 2회 거쳐야 한다. 때로는 에너지 소모가 더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애를 쓰면 고통만 쌓일 뿐이다. 고통이 쌓이는 나름의 생각만 정리하는 것으로 맺음하기로 한다. 여기서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을 논한다면 공자왈, 맹자왈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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