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생활
불륜, 부정행위로 부부관계가 파탄나는 경우, 이유 등에 대해 에세이로 몇 건의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불륜, 부정행위의 유형, 계기, 이유, 그리고, 사후처리 등에 대해서는 유사한 점들도 있지만, 부부의 수만큼 다양하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유는 불륜에 대한 착각, 부정행위에 대한 착각에 대해서 나름의 경험론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상간자(불륜의 상대방인 여성, 남성)의 매력에 밀려서 불륜이 일어난다?
과거로 거슬러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연애할 때, 신혼일 때 관계의 열렬함은 굶주림을 압도할 정도였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관계를 맺고, 체내 기력을 다 소모할 때까지 합을 맞추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비로소 가정이라는 형태의 최소단위의 사회가 형성된다.
임신기간 중 일정 기간 동안 부부관계를 맺는 것이 위험할 수 있고, 출산 이후 수유를 하는 기간에는 여성의 경우 성욕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남자의 경우는 변함이 없거나 관계횟수의 감소로 성욕이 증가하거나 성욕거부로 불만이 쌓인다.
부부관계는 아이, 아이의 양육보조자 등 제3자에 의해 두 사람만 존재할 때 보다 감시가 심하고, 상대와의 관계는 신선도가 떨어진다. 왜냐하면 성적 욕망의 대상에서 점점 가족애가 발생하고, 가족애의 특성 중 하나는 근친상간이 금지된다는 점이다.
또한, 부부 상호간 가족애가 증가하면서 상대방에게 호감과 매력을 이끌어 내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맞벌이가 많으니 배 나오면 남편보다 늘씬한 남 직장동료에게 호감이 갈 수 있고, 쭉쭉빵빵한 여 직원동료에게 성적 매력과 호기심이 생길 수 있다. 자주 보면 정들고 애정이 싹트는 법이나, 부부관계에서는 역작용을 한다.
그런데, 실무상 불륜, 부정행위로 인한 이혼사건, 또는 위자료청구사건에서 상간자가 배우자보다 못 생기고, 매력이 더 없어 보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내 의뢰인이 훨씬 보기 좋고 미적 요소를 겸비하고 있음에도 상대 배우자는 다른 이성과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는다.
성적 매력이나 외모 등에 밀려서 배우자가 다른 이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단순한 섹스와 영혼의 섹스의 구별!
아무리 관계가 좋은 부부라고 해도, 아무리 관계가 좋은 연애자들이라고 해도 100% 지속 중인 관계의 상대방에게 집중력이 집중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외모, 능력, 성실도 등 여러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면 어디 한 구석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분명한 사실은 남녀를 불문하고 그 아쉬운 여백과 공백을 다른 이성에게서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내적인 영역에서만 그런 노력이 그치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지만, 이를 행동적 실천으로 실행에 옮기면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상대 배우자나 연애자가 이를 인식하지 못 하면 발생된 문제는 수면 위로 뜨지 못 한다.
그런데, 실무를 해 보면 배우자에 대한 생각과 신뢰에는 변함이 없지만 다른 이성과 단순히 섹스를 했다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고, 단순한 성적 교합을 떠나 감정은 물론 영혼적 교류까지 이루어지는 관계가 있다. 여성 의뢰인이 부정행위를 한 사건들을 보면 실수라고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케이스가 있고, 배우자보다 상간남을 정신적으로 더 신뢰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 의뢰인의 경우, 후자가 좀더 많은 듯 하다.
남성의 경우에는 타고난 성적 기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상간녀와의 섹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상간녀가 달라져도 부정행위 태도에 변함이 없는 경우도 많다.
예상컨대, 부정행위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보면, 일단 피상적인 접촉이 몇 번 있었을 것이고, 그러다가 일정한 계기로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실제 서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진지한 분석없이 '사랑'한다며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런 과정이 아니라면 돈을 주고 성을 사는 행위를 할 수도 있다. 성을 사는 행위에 의한 섹스는 남녀 구분이 없다. 여하튼 배우자에게서 느끼지 못 하는 정서적 순화나 교감이 개입된 경우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라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 배우자를 처음부터 가족관계에서 추방하고자 불륜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변화된 문화, 문화인식!
사랑이라는 감정이 일면 섹스가 수반되지만, 섹스를 한다고 해서 사랑이라는 진실한 감정이 수반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분위기, 문화가 남녀의 성적 결합에 대해 개방적으로 변화되었고, 한번 섹스를 하면 평생 가야 하는 관계로의 구속력이라는 것은 없어진지 오래다.
여성들 역시 섹스 자체가 자신의 결혼과 인생에 구속력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학시절에 친구들과 하숙방에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남녀가 사귄다는 징표는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손잡기', '키스', '섹스' 등 여러 기준들이 소박한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다 거론되었던 듯 하다. 그 시절에는 이성과의 경험이 전무한 상태인 갓 미성년에서 성년이 된 자들만 모여 있었기 때문에 남녀교제의 외부적 징표가 다양하게 입밖으로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 남녀가 사귄다는 것, 사귀고 헤어졌다는 것. 그 사실에서는 섹스가 수반되었다는 것, 그런데, 그 특정 상대와는 더 이상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정도이다. 왜냐하면 사귈 때 몇박 몇일로 해외여행도 가고, 국내 여행도 다닌다. 손만 잡고 수면을 취했을리가 없지 않은가(이 부분에서 고지식한 것인가).
이같은 사회적 변모와 분위기는 부부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친구들 중 누구는 애인이 있다고 술자리에서 말한다. 5명이 모인 자리에서 1명이 그런 고백을 한다면 이를 확대비약하면 전체 부부 중 20%는 부정행위 중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를 통계적 수치로 예시할 수 없음이 아쉽다.
따라서, 불륜에 대한 착각은 부정행위로 정신적 고통을 받은 한 쪽 일방이 씻지 못 할 잘못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개방이 지나치게 서구화되다 보니 도덕관이 쉽게 무너진 결과 때문이다.
부정행위를 한 배우자, 상대방을 원망하고 배신감을 표출할 수 있다. 다만, 자책할 이유는 없다. 단지, 관계유지를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는지 반추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배우자가 상대 배우자를 위해 성심성의를 다 하더라도 몇가지 이유에 의해 부정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불륜은 매력의 상실, 상대적 비교열위, 가족관계로부터의 추방 등에서 이유를 찾으면 안된다. 오히려 사회적, 외부적 요인이 훨씬 더 큰 압력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