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주의화 현상들
진실로 국민은 정치인들의 행태를 지켜봐야 한다. 그것도 여러 채널을 통해야만 한다. 여당친화적 언론이 있고, 야당친화적 언론이 있다. 진보적 언론이 있고, 보수적 언론이 있다. 최소 극단을 달리는 채널들을 양쪽 다 들여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도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저마다 편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적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사글세(보통 10개월분 월세를 내고, 보증금은 없음)로 전전하며, 이사를 수도 없이 다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자본주의라는 것이 뭔지 몰랐지만, 10개월 지나서 월세를 한 달치라도 못 내면 곧바로 방을 빼라는 집주인이 있었는가 하면,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서 몇개월분씩 월세를 받지 않았던 집주인이 있었던 것 같다.
'집'이라는 자본을 기준으로 우리 가족은 주인의 눈치를 보는 하위 계층에 속해 있었다. 나는 '각 그렌져'를 타고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가 하면, 나처럼 못 사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반감을 갖거나 빈부격차가 눈에 띄게 펼쳐지는 세상을 향해 비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의사가 꿈이었으나 학비가 많이 들고, 공부기간도 길다는 것을 깨닫고 고등학교때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했다.
대학을 들어가 보니 NL, PD가 어쩌고 저쩌고 선배들한테 들었고, 우리가 배운 역사는 지배층 논리로 서술된 것이기 때문에 역사공부를 새로 해야 한다는 등, 깨어있는 학생이 되려면 행동해야 한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도 주중에 한 번은 최루탄 냄세를 맡아야 했다. 그런데, 나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등의 개념만 파악하고, 실제 행동할 시간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시간이 빠듯했다.
대학시절에는 YS말기, DJ, 노무현이 대통령이 있었다. 연세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강연을 듣고 노무현 대통령을 무척 좋아했지만, 실험적 정치로 일관하고 주변 단속을 못 하는 것을 보고, 지나치게 과격한 진보란 결말이 좋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노 정권의 실정으로 경제에 강점을 두어 MB가 당선되었다. 현대에 있을 때부터 욕심이 많았고, 그의 형도 권위적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민심이 그쪽으로 흘렀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자유주의가 체득된 인물이고, 구조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역량과 의지의 문제를 탓하는 인물이었다. KH는 넘어가자. 하지만, KH가 좋은 참모들을 곁에 두었다면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똑똑하지 않은 리더는 잘 모르기 때문에 참모들의 계책을 쉽게 수용하는 법이다. 물론, 참모들이 충직하고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 한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몇 번 있었다. KH는 사태가 어찌 되었는지도 모르고, 진실로 일반 선박침몰사건(피해자가 아이들이라는 점이 비극이지만 1년에 발생하는 선박충돌 사건은 상식보다 훨씬 많다), 비공식적 자문, 야매 피부마사지 등으로 좌초하고 M이 정권을 잡더니 모든 노선이 중국, 북한을 향해만 갔다. 경제성장동력에 대한 비젼제시는 없었다. 정치적 토론도 유명무실했다. 노 대통령의 사후를 보고, 정권교체시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 나갔다. 코로나 이전에 이미 모든 분야에서 낙제점을 받은 정권인데 코로나가 정권유지에 한 몫 했다. 지금도 그렇다.
국민들은 야당이 밉기도 하고, 국정안정, K방역의 실체도 알지 못 한채 세계 제일이라는 선전, 선동에 휩쓸려 정치적 자질, 정책 등에는 관심없이 표를 몰아주었다. 드디어 권위주위적 체계가 성립되었다.
권위주위적 체계는 사회주의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유재산 국유화(전부 몰수할 수는 없으니 막대한 세금부과), 자본에 대한 통제, 국가적자재정, 유례없는 통화정책 등을 통해 개인들의 인생을 향한 공과를 따지지 않고 임금을 급속도로 상향하고, 돈을 막 가져다 풀었다. 그리고, 관심의 집중과 유도를 위해 민감한 반일감정에 불을 짚이고, 철지난 학생운동, 민주화운동을 꺼내어 국민들이 군사독재의 폐해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야당의 근본을 동일시하도록 만들고 있다.
K방역은 훌륭한 것이지만 사회주의의 실험도구로 막강한 역할을 했다. 예산을 정해진 것보다 추가로 쓸 수 있고, 그일로 평균 이하의 사람들의 민심을 확고하게 집중, 유도할 수 있다. 세계 일류의 대기업을 때리는 것은 부르주아지의 파괴를 원하는 사회주의의 실험이다. 아마 삼성이 이번 정권에는 돈을 많이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예외는 없다.
그러나, 권위주위적 체계를 구축한 이상 타협은 필요없다. 계획에 의해 밀고 나가면 된다. 민주적 정당성도 있다. 다만, 그 정당성은 절차적인 것일 뿐이다. 실체적 내용면에서는 검증이 필요한데 토론과 협상, 소수의견의 존중이 결여되어도 무방하다는 것이 지배적이니 민주적 정당성의 실체적 측면을 검증할 방법은 없다. 결과가 승패로 나올 때까지 국가, 국민은 관전할 수 밖에 없다.
어중이, 떠중이. 정치적 경험과 숙련도 없는, 정책도 없는, 코로나 덕에 뱃지를 단 초선들은 저 노장들의 라인을 따라 줄을 서기만 할 뿐이다. 결국, 권위주의적 체계의 핵심세력들이 이 국가를 이끌어갈 것인즉, 이들의 실패사례는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교사하고 개과천선하였다면 모를까 사람이 어디 쉽게 바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