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라는 현실을 사회주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세계화는 국가간의 상호의존성을 의미한다. 교통, 통신의 발달로 세계화는 1980년대를 거슬러부터 지금껏 활성화되어 왔다. 물론, 자유주의와 보호주의간의 갈등은 여전히 있지만 세계적 교류없이 경제적 성장을 실현하기란 어렵다. 고립은 결국 죽음이고, 교류는 순환이다.
현재의 세계는 기술과 무역, 자본의 이동에 있어서 상호간의 긴밀성이 높고,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기업들의 자유로운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문화적 교류는 이념과 경계를 뛰어 넘는다.
하이퍼 민주주의. 관리하지 않는 새로운 방임,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의 보장, 민주주의의 확고한 확산이 하이퍼 민주주의다. 사회주의는 권위적인 체제에서 리더십의 계획 하에 하향 평준화(나의 개인적 견해)를 추구하는 것인데 새로운 투자기회, 새로운 시장개척, 엄청난 자본의 투자를 계획 속에 집어 넣을 수는 없다. 사회주의 리더들이 과연 미시경제와 거시경제에 전문적이고, 고도의 윤리성과 합리성을 구비한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발전은 규제가 없는 자유경쟁 속에서 여러 국가와의 투쟁 속에서 시장의 힘을 발휘했을 때, 국가의 이익과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사회주의는 보호주의에 가까운 대외무역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결코 효율성과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줄 수 없다.
중국의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살펴보자. 중국에 투자했던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본과 시설을 빼려고 하면 세무조사니 뭐니 하면서 생산설비를 다 빼앗는다. 중국에서 사업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중국은 군사력이 강하기 때문에 나약한 한국 따위의 기업들이 생산기반과 기술을 남김없이 들고 귀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은 중국에 무시당하면서 중국의 길드에 합류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도 아니고, 친미적 사대를 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를 취한다. 사회주의의 문제는 내적 문제도 있지만, 세계화에 맞지 않는다. 세계화가 사회주의로 변모를 대부분 거친다면 문제는 다르겠지만, 결코 사회주의는 세계화적 이미지에 맞는 퍼즐이 아니다.
지금의 여당과 리더는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듯 하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하에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빈번하게 드러낸다. 북한은 공산주의다. 그것도 정통적 마르크스적 공산주의도 아닌 특정계급의 사치와 빈곤한 인민의 명확한 구별가능한 정치체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리더십은 북한을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친구로 대하려는 듯 하다.
지금은 탱크와 각종 포를 전진배치하여 북한 따위에게 굽실거리느니 까불면 혼난다라는 메세지를 전달해야 한다. 사회주의는 전세계화적 문화가 되지 않는 한, 대외적 경쟁력은 물론, 내수적 문제도 함께 겪을 뿐이다. 주체사상을 따르고자 한다면 주체사상의 정의를 정확히 내려보기 바란다. 그리고, 공표해 보기 바란다. 자신의 어머니 고향이 함경도니까 향수에 젖어 이 따위 외교와 정책을 펼칠다면 사회주의의 본질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대외적 경쟁력은 일개 개인에게 맡기기에는 역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