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관찰하는 우리의 자격
성급한 일반화를 하면 우리 국민 전체가 하나의 목표의식과 하나의 감정으로 뭉칠 수 있는 순간, 계기는 전쟁, 올림픽, 월드컵, 기타 스포츠 경기뿐이 아닐까 한다. 그 순간과 계기를 제외하고는 개별 국민들이 생각이 다르고, 때로는 첨예하게 대립하며 자신과 다른 견해와 편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시시비비"의 기준을 들이댄다. 개인적 견해에 따르면, 국민이 단합된 적이 있었던가 의구심이 든다.
우리는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대해 'YES, NO'라는 판단을 할 때의 기준과 타인의 사고와 행동에 대해 인정하거나 부정할 때의 기준이 전혀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적 수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특정 종교적 교리에 의해 순종적이거나 부자이거나 명예가 드높은 사람은 자기판단에 대해 타인을 판단할 때 보다 엄격하고 높은 기준으로 자기행위와 사고에 대해 'YES, OR NO'를 판단해야 하는데, 지식, 경험, 지위, 돈, 명예의 높고 낮음, 많고 적음에 별반 관계없이 느슨한 자기관찰과 타이트한 타인관찰이 일반적이다.
우리는 관계의 거리가 멀수록 쉽게 타인에게 비판이 아닌 비난을 쉽게 가하는데 익숙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과연 그럴만한 자격을 겸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우리 자신이 비록 도덕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도덕적 의무를 준수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비난을 가하는 것은 가능하고 허용된 일이며, 현실적으로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 내가 특정 고위직 공무원을 비난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얘기를 들을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쫓겨날 일 따위는 없다.
우리가 타인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따져보면 우리도 그에 못지 않게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며 이기적이어서 결코 타인을 비난할 자격이라는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을 비난하는데 익숙하며, 비난에 동참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흥미로워진다.
우리가 인성 쓰레기라고 판별하기 전에 우리의 흥분과 분노가 어떠하든, 타인의 생각이 실제로 어떠한 것인지, 그 생각이 어떤 상황에서 발생한 것인지, 우리가 그 타인, 그 상황이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단지, 내 비위에 거슬리고, 나를 핍박하며 개인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을 강요하는 것만 같은 느낌만으로 타인을 인성 쓰레기로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섣부른 일이다.
공정은 이 부분에서도 분명 있어야 한다. 공정, 공정 외치면서 인성 쓰레기를 분리수거할 때는 엄정하게 공정하고, 자신에 대한 관찰에 있어서는 허망하게 불공정하다면 우리는 인성 쓰레기를 감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감별결과는 매우 부정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