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똥구멍]

#10 순환

by 윤소평변호사

똥구멍은 자신의 운명과 기능에 대해 순응적 삶을 살다가 그 운명과 기능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죽음은 똥구멍의 가치를 제로로 만든다. 죽음은 모든 것을 없었던 상태로 만드는 불쾌한 사건이고, 영혼으로 남아 천국의 아파트로 입주하던지, 지옥의 한켠에서 개고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영혼의 공간에서 영혼끼리 어울려 노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의 배양에는 똥구멍이 배출한 배설물에 의해 길러져서 우리 체내로 순환되어 개입할 수도 있고, 나의 인생의 행적이 후세에 의해 지침이 되어 반복됨으로써 죽음 이후에도 그 운명과 기능적 가치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향기나는 똥구멍의 인생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사멸하는 사건이다. 똥구멍의 기능은 시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을 통해서 확인된다. 죽으면 인간의 감지능력이 소멸될 것이며, 우리의 인식능력과 지성은 더 이상 발휘될 수 없다.


영혼의 형태로, 살아있는 똥구멍을 가진 인간들을 내려다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는 구체적인 사건에 개입할 수는 없다. 음식이 입에서 내장기관을 타고 똥구멍에 이르러 근심을 털어 세상 밖으로 다시 내놓듯, 그 배설물이 양분이 되어 음식을 길러내어 다시 입으로 들어오는 순환처럼, 우리의 인생의 순환은 지각할 수 없는 영혼에 의하든, 남아 있는 관계적 사람들에 의한다.


단지, 죽음은 변할 뿐이다. 변화일 뿐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변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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