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
사상은 집단적 광기이기 때문에 때로는 위험하다. 미개한 사회에서 광기는 춤과 노래로 해결될 수도 있지만, 총과 칼의 부딪힘, 그리고 죽음으로 귀결될 수 있다. 사회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역사적 유래와 갈등, 많은 공부벌레들의 이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지난하기 때문에 차치하기로 한다.
러시아, 중국, 북한을 보면 민주주의가 경제적 성장의 필수조건,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전세계를 통틀어 가난한 혈족이기는 하지만, 그 체제에 대해 논할 가치도 없다. 중국, 러시아의 경우 민주주의 없이 경제성장, 즉, 자본주의의 씨앗이 어떻게 열매를 맺게 되었는지 사실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중국은 2010. 이전 경제성장율이 30%를 육박했었고, 자본주의에서의 비자본인 노동의 대가가 증가함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개헌을 통해 푸틴이 장기집권을 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자유주의와 격차를 벌리고 있다. 시진핑은 종신제를 선언하였고, 이에 일언반구를 했다가는 존재가 사멸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군주와 귀족을 몰아내고, 기호에 맞는 지도자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으로 민주주의를 택했고, 그 과정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결별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다가 사회민주주의로 변태하고 있다. "엘리트"들은 사회주의를 거북이가 머리를 내밀듯 현실적 실험을 하고 있다. 자유주의 하에서 복지는 선별적이고 부분적이지만 사회주의에서 복지는 보편적이고 전체적이다.
민주주의는 대체로 의회주의로 구현되어 왔는데,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정치적 합의, 토론에 의해 해결점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그 빈도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의회에서 진정한 토론은 물론 정책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리당략에 의존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진정한 백신은 없고, 운좋게 백신의 존재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양산과 주사는 인내할 수 없을만큼 느리다.
권력은 허구이지만 그 행사는 실존이다.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지도자들에게 정당민주주의, 언론매체 등은 장애물일 뿐, 천덕꾸러기로 여겨진다. 정당과 언론은 권력쟁취 이전에는 필요한 도구였지만, 권력을 잡은 후에는 이것들은 발목을 잡는 요소이고, CCTV다. 정치적 리더뿐 아니라 금융, 경제 분야의 리더들은 사실 민주주의, 특히 '의회'민주주의를 기피한다. '의회'는 전문성이 떨어지고, 정략적 이익만을 생각할 뿐, 일처리 속도도 느리고, 때로는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일 자체를 안한다. 오로지 권력을 잡은 후에는 다음 선거 생각뿐이다. 국민들은 매번 사기를 당하고, 배반의 장미를 받을 뿐이다.
획득된 권력은 정당과 언론을 장악하고 국민에게 가공된 정보를 제공한다. 국민은 현혹되고, 여당과 야당은 각자가 진실이라고 모순된 주장을 한다. 산재한 사회적 문제해결은 느리거나 해결의 기미가 없다. 국민은 전통적인 언론, 정당을 신뢰하지 않고 플랫폼에서 부유하는 정보를 취합해 진실을 모자이크한다. 문제는 국민이 불필요한 의회, 정당을 세금으로 먹이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공룡기업들이 만든 플랫폼의 정보를 더 신뢰하고, 특정 정보를 뇌에 저장하다보면 사고가 체계화되어 결국, 국민은 분열된다. 사람은 적개심의 대상이 공통성을 가질 경우 쉽게 융합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전 세계국민들은 '우리'끼리만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세계적 무역과 교류는 필요하지만, 코로나 이전처럼 초세계화에 대한 관심은 망각되어 간다.
결국, 의회민주주의, 정당민주주의에 대해 국민들은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데, 진실로 국민은 정당과 의회를 신뢰하지 않는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고차원적 형이상학적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애써 할 필요가 있을까. 여전히 민주주의는 영원히 존속해야 한다는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은 아날로그적 낭만성을 제공할진 모르겠지만, 네비게이션이 주는 편리함보다는 피로도를 높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