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수렵과 채취시대에는 법이 필요없었다. 자연이 주는 은혜가 주어진 곳이면 인간은 감사하게 수용하기만 하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체로 모두가 동등하게 이동생활을 했다. 하지만, 정착시대를 맞아 농경을 하면서 토지, 농작물의 소유권과 분배의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본래 토지는 무주물인데, 소유자(엘리트, 귀족, 군주, 영주 등)가 교묘하거나 사납게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토지와 농작물의 귀속주체와 배분의 방식이 정해졌다. 인간이 계몽되기 전까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고, 그 기준과 방식에 저항하지도 않았다. 엘리트들은 신과 소통한다는 이유로, 엘리트는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이유로,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임의로 기준과 방식을 정하고 강요했다.
이로인해 노동력 이외 자본을 가진 자와 오로지 노동력만을 가진 자가 분리되었다. 엘리트는 오직 노동력만을 가진 계층에 대해 근면을 강요할 필요가 있었고, 농작물의 일부를 엘리트에게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의무와 채무를 만들었다. 엘리트들은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일하지 않고도 사치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노동력뿐인 사람들에게 일정한 보호를 약속하고,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가차없이 처벌했다. 이를 위해서는 가지수가 많고, 보다 복잡하며 형벌이 필요한 법률이 필요해졌다.
인간의 제한적이면서 무제한적 상상력은 물리적 토지면적을 초과해 푸른 빛의 바다도 가질 수 있겠다는 데에 가 닿았다. 배를 만들고 항해를 해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복하기도 하고, 무역을 하게 되면서 보다 더 많은 교환규칙, 일반적 세법 이외에 관세, 상인들의 소득에 대한 엘리트의 몫을 정하는 규칙, 자유롭거나 일방은 자유롭지 못한 외국인과의 법적, 경제적 지위를 정할 필요성도 커졌다. 하나의 민족과 국가를 규율할 때 보다 더 많은 법이 필요하게 되었고, "힘"으로 정복해서 일방적으로 제정법을 강요할 수 있지 않는한, 교역대상국의 이해관계도 고려해 법을 만들어야 하는 복잡한 과정도 거쳐야 했다. 대체로 역사는 "힘"이 센 민족에게 법의 제정권을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시켰고, 현재도 미래도 그럴 것이다.
지식보유량과 지능의 상향은 의무에서 권리의 향유로 대중의 심장을 발화시켰다. 엘리트가 일방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정한 법의 수정, 폐기만으로 일이 끝나는 경우도 있었고, 엘리트의 목이 깔끔하게 잘려져 나가야 일이 해결될 때도 있었다. 법은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변화에 의해 수정되거나 폐기되기도 한다. 애시당초 법의 수명이 정해져 탄생(한시법, 일몰법)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미래에는 더 많은 법률이 필요하고, 단축적 주기로 생성, 수정, 폐기의 순환을 거칠 것이다. 엘리트들은 사리를 위해 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기술 역시 법을 더 많이, 더 치밀하게 출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법은 언제나 현상과 문제 뒤에 생성된다는 점에 있다. 예상되는 미래를 위해 법이 생성되는 경우는 없다. 이유는 법의 출산과정을 보면 합의와 표결, 예산 등 임신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률은 최소한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법치주의를 역사가 선택한 이상 법률 자체의 제한적 속성을 무시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법률은 엘리트, 플루토크라트, 노동귀족, 기술보유 기업, 로비스트 등 법의 지배를 받는 대중의 간섭없이 산출된다. 법에 의한 지배가 지나치게 공정하다고 신뢰하는 것은 엘리트 등의 레토릭에 대중이 기만당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법은 한 줄이었다. 에덴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과의 섭취금지 뿐이었다. 그 이외에는 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