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공포는 무지에서 발생하고 불안은 예측불가성에서 발생한다. 불안을 느낄 때 상황적 현재의 미래가 어떤 결론으로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과 직관을 동원해 시간의 작은 단위부터 큰 단위까지 예측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들어맞을지는 미래가 현실이 되지 않는한 경험할 수 없고, 희망적 예측이 아닌 최악의 시나리오에 의한 예측적 미래가 현재가 된다면 불안은 매우 커진다. 불안을 극복할 수는 없다. 다만, 불안을 최대한 감소시키기 위해 현재 행동적 실천을 할 수 있는 것이 최선이다.
전염병은 역사적으로 수백번, 수천번 유행해 왔다. 몇가지 전염병은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전염병은 아직까지 인류와 공동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전염병은 역설적인 효과도 발생시켰는데, 가장 주요한 것은 미래기술의 급속한 현재화, 교류와 동거문화에서 봉쇄와 분리의 문화화, 기존 체제(의회민주주의, 공교육 등)의 문제해결의 무능과 비효율성, 새로운 디지털권력에 대한 맹목적 순응문제에 대한 저항의 문제(정보관리문제, 세금문제 등), 게으를수 있는 권리(조건없는 기본소득), 노동의 무가치성 등 기존 숭배하고 칭송받던 것들에 대한 대변혁을 초래했다.
불안은 심적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본래 질병적인 것이 아니라면 외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학교, 직장이 없어진다. 나를 일부 정의하던 직업도 없어진다. 일부 전문직이 생존하더라도 대부분은 기술에 의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할 것이다. 불안을 달래는 일반적 모습은 '나까지는 괜찮겠지'라는 위안이 전부인데, 그것은 절대 효용이 없다. 생소한 프로그램을 배워야 하고, 그놈의 AI에 대해서도 접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어느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AI를 위한 AI'가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후자 AI에 대한 이해를 위한 학습과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AI는 고도의 강한 인공지능으로 비전문가가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의사결정까지 하기 때문에 그나마 인간의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후자의 AI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AI가 도출한 결론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수동적 인류가 인간적 자존심을 지킬 여유는 없다. 경험을 통해 알다시피 정치인들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불안만 더 키울 뿐이고, 국민의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일 뿐 아니라 불안을 해소해 줄 능력도 결여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무능력과 국민적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대부분 노출된 현상이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지면이 부족할 정도이다.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관성, 습속을 버리고 드론을 날리고, AI를 배우고, 신기술은 무조건 피상적 수준에 그칠지라도 학습하고 생활화해야 한다. 그 속에서 인생의 2막, 3막을 써 나가야 한다. 이 분야의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구별없이 피곤하게 생활하는 것만이 불안을 최소화하고 약간이라도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