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호주 원주민들이 불새(Firehawk)라고 부르는 솔개와 같은 맹금류는 산불이 나면 불붙은 나뭇가지를 '감히' 물어다가 다른 곳에 불을 퍼뜨린다. 그러면 산불을 피하려고 동물들이 도망치면서 솔개의 시야에 노출이 되고 이 때 먹이를 잡는다고 한다. 사실 불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이익과 그 파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은 불을 통해서 먹이사슬의 정점을 차지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불에 관한 전설들!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사한 덕분에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절벽에 매달려 매일 까마귀에게 '간'을 뜯어먹히는 처벌을 받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이기 때문에 먹혔던 간이 내일이면 다시 생긴다.
캐나다 유콘 지역에는 까마귀가 바다 가운데 있는 화산에서 불을 가져다 인간에게 주었다고 하고,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부족 중에는 오바시 오소우라는 어린 남자아이가 창조주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 주고 불을 피우는 방법을 알려준 덕분에 절름발이가 되는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여하튼 불의 발화에 대해서는 각 민족별로 여러 전설들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정글의 법칙!
태평씨는, 개그맨 김병만이 이끄는 연예인 부족들이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불을 직접 피우는 장면이 자주 보았다. V자 또는 U자 홈의 나무판에 뾰족한 나무가지를 몇시간이고 마찰시킨 다음 건초를 가져다가 불을 만들어 낸다. 태평씨는 마찰을 통해 발화점에 이르면 불이 나는 사실도 알고, 그 장면을 연예인들을 통해 보았다. 태평씨는 올림픽 성화의 점화가 태양열의 수집에 의해 발생하는 것도 보아서 알고, 정글의 법칙에서 후레쉬 발광판을 이용해 빛을 모아 불을 지피는 것도 보아서 안다. 그 원리도 안다.
그런데, 태평씨는 '불'하면 프로메테우스가 머릿 속에 먼저 떠오를까 의구심이 들었다. 발화점에 도달할 정도의 마찰력, 태양열의 수집에 의해 불이 생성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태평씨의 아들이 "엄마!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 불을 줘서 간을 까마귀에게 먹히는 벌을 받았대!"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태평씨의 아들도 '불'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평씨의 아들도 신화를 읽고 얘기한다. 그것도 알지도 못 하는 타국의 고대 신화를 말이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고 전설은 출처와 무관하게 전해져 오는 이야기다. 태평씨는 이야기는 그것대로 믿고, 과학적 이론은 그것대로 믿는다. 태평씨가 궁금한 지점은 이 부분이다. 과학이 '불'의 신비를 더 이상 신비롭지 않은 것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야기는 배척되어야 함에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말이다. 물, 불, 바람, 흙 등과 같이 인간의 생존에 근원적인 관계를 갖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과학적 이론의 인식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고, 신비한 이야기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그런 믿음이 태평씨에게 있다는 말이다.
머리 따로, 가슴 따로!
태평씨는 명백한 인과관계가 밝혀진 수많은 현상들 중 어떤 현상들은 그 상태로 인정되어 하나의 지식으로 창고에 저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신, 신적, 미신적,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 두룽뭉수리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지닌 나름의 매력을 인정하고 믿어줘야 어딘가 인간다운 색채가 발휘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태평씨와 이웃들은 대체로 명백함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명백하더라도 그것에 무엇인가가 더 첨가되기를 바라는 듯 하다. 명백한 것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그 상태로 두는 것 이외에 이야기가 첨가되기를 바라는 듯 하다.
태평씨는 손가락만 튕기면 불을 손안에서 만들 수 있고 그 불을 다른 장소로 이동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라이터는 기술이고 그 근원인 불에 대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게 느낀다.
태평씨는 말한다. "불은 피우는 것이기는 한데 프로메테우스가 가져다 준 것이라고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