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태평씨, 태평씨의 가족(자녀, 부모, 형제자매, 4촌 등), 친구, 동료, 그리고 태평씨가 알고 지내는 사람과 전혀 만난 적이 없는 모든 사람들은 삶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다시 빛이 밝아오고 사실은 우리가 밟고 있는 지구가 한바퀴 돌기 때문에 생기는 낮과 밤의 현상을 여전히 '해가 지고 뜬다'라고 하고, '일출과 일몰'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은 지구가 반바퀴 회전할때마다 발생하는 일임에도 말이다.
태평씨는 아침에는 밤을 기다릴까, 밤에는 어둠이 지나고 아침을 기다린 걸까. 길게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일까. 짧게는 사업의 성공, 승진, 소득성장, 유쾌한 사건 등을 기다리는 것일까. 태평씨와 그외의 사람들에게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결과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태평씨와 그외의 사람들, 인간이 가지는 목표라는 것에 대한 기다림은 반복지속되고 그 지루함의 길이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문제는 기다림의 대상이 품안에 쏙 안기더라도 여전히 기다림이 연속된다는 것이다.
어떤 기다림은 세속적이라 할 것이고, 어떤 기다림은 신성하다 할 수 있는데, 다분히 종교적 관점에서 그와 같은 구분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신성한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인가. 영혼의 구원, 니르바나, 피안의 세계로 갈 순간에 대한 기다림은 설레여서 지루하지 않단 말인가.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기다림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 자꾸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거나 유쾌한 경험을 하게 되면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쏜살같아 아쉬움이 남고, 퇴근을 기다리거나 똥마려움을 참을 때는 시간이 몇배, 몇십배 길게 느껴진다.
태평씨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반복지속되는 일상을 끌고 가는 나귀와 같다. 태평씨가 고안해 낸, 기다리면서 지루함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에게 선물을 하나씩 주는 것"이다. 미친 사람처럼 자신에게 "고생했다, 잘 살았어!"라고 독백을 하거나 크고 작은 물질을 때때로 선물하거나 좋은 사람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에게 충만감을 선물할 수도 있다. 태평씨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루하지 않도록 계속 스스로를 유쾌하게 만들 방법들이다.
기다리면 언젠가 그것이 올 것이고, 시간은 언제나 동일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어떤 때는 덜 힘들고, 어떤 때는 너무 힘들다. 데카르트는 "나는 고통받고 있으므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삶을 지배하고 인간이면 공통적으로 겪는 고통이다.
태평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은 지루하고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