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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씨는 이렇게 말했다][23]"신은 살아있다!"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태평씨는 신은 존재하고, 불멸도 있으며 하나님을 신뢰한다. 하지만, 태평씨는 일상에서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기도 하고 기억하기도 하는데,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신"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유신론, 무신론(유물론)의 논쟁이나 종교간의 갈등도 인간에게는 오랜 논쟁의 대상이고 지금도 향후에도 이런 상태는 지속될 것이다. 증거를 목격해야 믿는 인간에게 있어서 신은 존재와 부존재, 인정과 부정간 양단의 선택사항인 셈이다.


인간의 이성, 논리, 합리, 과학, 기술 등으로 점차 신의 영역이 좁아지고 신의 존재를 부정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여긴다면 다분히 지적 수준이 높은 인간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신을, 불멸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선택도 아니며 비논리적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의 창조 중 일부를 발견만 해 나갈 뿐 진정한 창조를 역사 이래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조란 모방일 뿐이며 인간의 능력은 인식할 수 있는 범위만큼만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 한 차례도 오감을 통해 경험하지 못 한 것에 대해 인간은 절대 사고할 수 없다.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인데,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고 있고 인간의 사고에 의하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식하지만, 신은 한순간에 과거, 현재, 미래를 인식한다. 그래서 전지하다고 하는 것이다.

"신이 없다면 신을 고안해야 한다", "질서를 위해 신을 발명해야 한다.", "신의 존재를 알지만 신을 신뢰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신에의 의존은 나약함 때문이다", "신을 믿는 사람들이 악행을 더한다" 등등은 수많은 철학자나 시인들이, 그리고 무명의 사람들이 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신의 존재를, 불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면서 "신의 뜻"이라고, "숨은 신의 준비작업"이 있노라고 말하고 기도하면 코웃음을 짓는다. 게다가 "신을 믿는 사람"의 부정하고 불법적 태도와 이기적 행태를 지적하면서 "신이 존재한다면 저런 인간 안 잡아가고 뭐하고 있느냐" 등의 말을 한다. 그러면서 불신이 공고하게 된다. "신은 없노라". 신을 믿는 척 하는 인간들의 인간적 행위를 신의 잘못과 신의 부재와 연관시킨 결과이다.


신은 인간의 사고 차원을 넘어서는 존재이고, 신이 전지하고 전능을 행하는 원리에 대해 인간의 사고로 마음껏 판단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사고방식에 의한 결론일 뿐, 신이 어떻게 전지한 것을 전능하게 처리하는지에 대하여는 한푼도 이해하지 못하고 믿고 기다리지 못 하기 때문에 신의 향후 처방이 어찌될 것인가는 시간을 두고 주시해야 할 몫일 뿐일 뿐, 절대 인간의 학습된, 유포된 이성에 의해 함부러 세상의 현상을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을 부인하는 사람도 신을 찾는다

아이들이 불의의 사고와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사업이 파산했다. 치명적인 중병에 걸렸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선고를 받았다. 가령 중력이 존재해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손가락에 의해 우주가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그토록 정교했던 이성으로 방어하지 못 했고, 극복할 수 없는 사건이나 계기에 맞닥뜨린 순간, 인간은 두가지 반향을 일으킨다. 신을 모욕하거나 신을 찾는 것.


만약, 당신이 3개월부 시한선고를 받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 어떤 생각이 들까. 힘든 세상을 감내하느니 딱 3개월 후에 죽는 것이 차라리 잘 되었다고 여길 것인가, 아니면 좀더 살게 해 달라고 의사를 붙들고 애원할 것인가. 정신적 이성, 의지의 고갈, 육체적 쇠약은 인간을 매우 겸손하고 겸허하게 만든다. 그토록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었던 물질적인 것들, 권력, 돈, 명예 따위는 3개월의 사망선고를 늦추거나 취소하는데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 한다. 누군가 만들어진 신에게 집단적 광기를 발휘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든, 그런 일부 의견을 신뢰하였던 말든, 인간은 최후의 순간에 최고로 고통스러운 순간에 과학과 기술, 이성에게 빌지 않는다.


"신이시여! 살려 주소서!" "이 아이를", "저를"

복잡하고 고지식한 철학적, 종교적 담론은 필요없다. 신이 부재하고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인간적 사고 수준의 틀에서 세속적인 만족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에 겸허하고 공손을 모른다. 하지만,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삶을 살리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신을 찾는다. 특정한 신을 찾을 수도 있고, 온갖 신을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마냥 푸른 하늘에 구제와 구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다. "신은 존재하는 것이고, 발명된 것이 아니며 억지로 부인논리를 만들 필요도 없이 불멸이며 전지전능한 것이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인간의 사고수준이라고 해 봐야 3차원적일 뿐이고, 4차원부터 11차원까지 있다고 가설을 내세우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수용되지도 않는다. 인간의 오만하고 강인했던 의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죽은 아이를, 죽어가는 당신을 살릴 수 있는가.


인간은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믿지 않는 못된 습성을 길러왔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에 인과관계가 있는가.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죽어가는 것에 인과관계가 있는가.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이웃을 사랑하면 그들보다 경쟁적 우위를 차지하려고 삶을 희생시킬 이유가 어디 있는가. 자신의 지적 수준을 신을 부정하면서 드러낼 필요가 있는가. 신은 단 한 차례도 모습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의 수준과 시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능한데 말이다.


인간이 업을 지녀 돌고 도는 삶에서 니르바나해야 한다면 어디로 가게 될까. 말씀에 순종하면 천국에라도 갈텐데, 죽음이란 생체활동이 정지하고 몸이 원자와 분자로 쪼개지는 생화학적 작용에 불과하면 그 무슨 의미가 있는가. 좋다. 살아서 했던 모든 행적이 그의 죽음 이후에 전래되어 모멘토가 된다고 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질 뿐이다. 인간이 죽더라도 신은 불멸이다. 그래서, 다른 시간대의 인간들에 의해 있니 마니, 신의 일을 하니 마니, 순환반복으로 인간에 의해 논쟁의 대상이 된다. 계속 그런식일 것이다 .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 신을 찾는 인간을 보면 신을 강력하게 부인했던 인간들에게조차 신이라는 개념적 존재가 늘상 그와 함께 했던 것이고, 그조차 결국에는 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신의 시간은 영원무구하고 인간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은 자신을 부인하는 인간이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쯤이야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태평씨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살아있다". "때문에 믿고 순종하는 것이 좋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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