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태평씨는 이렇게 말했다][26]"기사님을 존중해라"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우리는 택시, 버스, 기차, 지하철을 탈 때 단 한번이라도 "기사가 길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기사가 면허증이 없는 것은 아닐까?", "기사가 음주운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택시, 정해진 번호의 버스, 기차, 지하철을 타면 당연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런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니까.


태평씨는 TV 등을 통해 아무개가 버스기사를 폭행하고, 택시기사를 폭행하였다는 식의 뉴스를 접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리고, 태평씨의 아들의 친구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해서 합의금으로 700만원을 지급했다는 얘기도 건너 들었다. 태평씨는 문득 사람들이 왜 기사를 때리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유독 택시만이 잘못된 목적지에 도착할 가능성이 있는데, 버스, 기차, 지하철 등은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기 때문에 목적지를 잘못 찾아갈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택시기사에게 승객이 술에 취해 목적지를 잘못 알려 주었거나 택시기사가 요금을 더 벌기 위해 목적지를 향한 최단거리를 택하지 않고 우회해서 운전 중 승객이 이를 눈치챘다거나 할 때 승객이 원치 않는 위치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블랙박스 등이 있어서 후자와 같이 택시기사가 목적지를 우회해서 가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태평씨가 산만해졌다. 왜 기사를 때릴까. 요금을 주었으니 승객이 고용주이고 기사는 고용인인가. 기사는 나의 이동을 위해 노동하는 나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인가. 목적지가 정해지면 수동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기 때문인가. "손님 다 왔습니다! 일어나세요!", "마스크 쓰세요!" 하니까 '제까짓게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야'라는 불쾌감이 들어서인가. 태평씨는 어느 부분도 기사를 때릴 수 있고, 때릴만하다고 긍정할만한 것을 찾지 못 했다.


태평씨는 생각을 정리한다. 기사를 때리는 사람은 두 부류이다. 우선 평소 지나치게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어서 겉으로는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기사를 때리는 경우이다. 다음으로 평소 지나치게 얕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어서 겉으로도 평범한 사람보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생활하다가 술에 취하거나 기분이 상해 있을 때 못난 자존감을 불러내어 기사를 때리는 경우이다.


결국, 기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지나친 자존감이나 부족한 자존감이 기사의 "다 왔습니다!", "마스크 쓰세요!"라는 옳은 말이 본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다. 기사를 때림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하려고 하거나 억눌린 자존감이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기사가 맞대응하면 쌍방폭행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블랙박스, CCTV 등의 증거를 통해 후일 기사의 억울함을 해소하겠노라 생각하면서 기사는 폭행을 당하는 것이다. 웃기는 사실은 기사가 얻어맞기만 하고 무대응일 때 저런 부류들의 인간들은 화가 더 난다는 점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물리력을 통해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인데, 기사가 이에 대해 수동적으로 반응하니 더 때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야~! ~~~라고 말 좀 해봐!", "야~! 아까 했던 말 다시 해 봐!". 이런 식이다. 이런 사람들은 평상시 타인을 경시하거나 타인을 적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표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본심이 드러나는 법이다. 기사를 때리는 것은 목동, 목자, 등대를 때리고 부시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세상에는 내가 무시해도 무방한 존재란 없다. 먹고 살기 바쁜데 나를 적대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알량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평소 저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 경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 저보다 나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불만과 적대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사를 때린다. 사실 사람들은 저마다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모두가 약점이 있고 사연이 있고 나와 똑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겉으로 포장하고 허위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나보다 나아보일 수도 있고 못해 보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비교는 내 스스로가 하면서 자존감을 키우거나 쭈그러들거나 선택하는 것이다. 부러워보여도 속내는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고, 못나 보여도 속내는 행복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무시하거나 적대할 사람이란 그러한 점에서 있을 수가 없다. 기사를 때리는 사람은 못나도 한참 못 난 인간이다. 세상 어디에도 자신의 실체를 드러낼 수 없으니 기사와 단둘이 있을 때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의 눈이 단 두 사람 이외에도 더 존재하는 것을.


태평씨는 말한다. "네가 무시할 수 있거나 적개심을 가질 사람은 세상에 없다. 오로지 네가 그런 선택을,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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