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나태와 권태, 식상은 인생의 단조로움, 루틴에서 발생한다. 생활이 고달프고 변화무쌍하면 루틴을 인식하거나 체감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삶에서 루틴에 추가적인 루틴이 부가되어 정력과 감정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할 경우 번아웃되는 것이지만, 루틴이라고 느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상당한 기간이 경과되면 나태, 권태, 식상을 체감하게 된다. 삶이 너무 지루해서 눈썹을 밀었다는 사람도 있다. 지루한 삶 속에서는 거울 속 데칼코마니인 자신의 모습조차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루틴은 신체적 기능 저하, 사고의 경직에 가 닿기도 하는데 부정적 성격의 술, 도박, 마약, 도박, 불륜 등으에 시선을 보낸 다음 행동화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고, 이를 극복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면 삶의 루틴에서 삶의 루인(Ruin)으로 바닥에서 몸서리치게 될 수도 있다. 루틴에서 벗어나고자 긍정적 성격의 여가, 여행, 직업 이외의 모든 활동 등으로 시각을 이동시켜 실천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를 통해 루틴을 감량할 수 있는 에너지를 크고 작게 수집할 수도 있지만 그 효과의 지속은 일률적이지 않다. 루틴에서 벗어나고자 하고자 하는 모든 계획과 노력은 이미 삶의 플랫라이너(flatliner)의 전제와 자각 속에서 아주 일부 일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까마귀 고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모순적으로 기능하는데, 반드시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시 출력해야 하는 기억은 쉽게 망각되고, 처절하게 지우고 싶은 기억은 명백하고 돌출적으로 출력되기 때문에 루틴을 망각의 효능을 빌려 떨쳐낼 수는 없다. 특히, 삶이 시간이라고 하는 제약 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루틴은 더욱 견고하고 계획적으로 진행되는데, 특정한 노동, 작업을 영구적으로 중단하고 새로운 노동, 작업을 선택하지 않는 한 루틴은 망각에 의해서도, 긍정적 부정적 방법에 의해서도 정신과 육체 밖으로 내몰수도 없고 감각적 체험으로부터 삭제할 수도 없다. 루틴은 과거의 노동, 작업을 중단하지 않는 한 유보되는 것일 뿐 제거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삶은 지루한 다규멘터리에서 장르를 변경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루틴을 감량해야 할 필요성과 절실함은, 건전한 영혼과 건강한 신체를 위해 필수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하는 지독한 전투인데 오로지 루틴을 어르고 달래는 방법 외에는 별도의 방안을 제시할 수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새로운 모습으로 개시되었다고 의식적인 착각을 해야 하고, 먹을 수 있어 좋고, 함께 할 수 있어 좋다고 자신을 가스라이팅해야 한다. 누군가 마인드컨트롤이라고 표현했지만, 누구든 자신의 정신을 의지대로 조작할 수 있지 않다. 자신에게 지속적인 착각을 주입시키는 것 이외에 어제, 오늘, 내일을 그나마 구분지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수면 아래로 들면서 내일 죽음의 상태에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좀처럼 하지 않는 것과 달리 새로운 기상상태를 생존의 연속으로 감사해야 한다. 매우 구체적이고 면밀하게 관찰하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미세하게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메뉴가 다르고, 스치는 타인이 다르고, 피로와 긴장도 다르다. 전체적 루틴 속에 부분적 차이가 있는 셈이다.
삶은 4월만 잔인하지 않다. 루틴에 대하여 무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루틴감량은 결코 용이한 작업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전체와 부분에 있어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지나치게 착각하다 보면 삶이 달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