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유토피아에서의 식사장면 중 일부를 소개한다.
~~~~(전략)우선 특별히 정해진 식탁에 앉은 연장자에게 가장 좋은 음식을 차린다. 그 다음 다른 식탁에 음식을 골고루 분배한다. 가장 좋은 음식이 부족해서 모든 식탁에 배분되지 못 하는 경우, 연장자들이 자발적으로 다른 식탁에 좋은 음식을 나누어 준다. 결국, 모든 이들이 좋은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먹게 된다.
~~~~(생략)식사 전에 도덕적으로 의미가 있는 글귀를 읽는다. 그리고, 식사 시간에 연장자들이 그 글을 토대로 적절한 대화주제를 제안하고, 연장자들은 대화를 독점하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한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사람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런 여유롭고 즐거운 식사 시간은 상당히 오래 지속된다.
~~~~(생략)식사 시간에 음악이 들리고 디저트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향을 피워 은은하게 식사공간을 채운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즐거움도 금지되어서는 안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장자는 꼰대로 치부된다. 대화는 커녕 일방적인 지시, 그들이 학습하고 경험한 것들의 편도열차식 전개는 젊은이들의 입을 막고 생각을 닫아버리게 만든다. 대화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들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대화를 연장자가 독점해 버리는 것이 '대화' 대부분의 실제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마음 편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연장자들은 젊은이들이 철이 없고, 생각고 유치하고 세상을 맡기기에 어느 때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연장자들의 사고와 말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평가한다. 젊은이들은 꼰대들이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만들어내고 사용한다. 패션에 관한 기호도 젊은이의 것과 꼰대의 것은 다르다. 자유에 대한 개념도 서로 다르다. 평등, 공평에 대한 개념도 서로 다르다.
다름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는 방식이 반유토피아적이어서는 안된다. 현대 상황이 그렇다. 대화, 대화의 유도, 청취의 관대와 인내, 대화의 자유, 도덕적으로 유의미한 주제에 대한 대화의 부재, 이기적인 화제의 독점, 일방적인 담화, 무비판적인 거부 등이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기대여명이 길어지면서 꼰대도 층과 결이 나뉜다. 젊은이가 꼰대가 되고, 꼰대가 상꼰대가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최상위 꼰대가 된다. 화합과 조화는 없다. 갈등과 적개만 팽배하다. 일자리, 소득분배, 연금, 정치적 편향 등 전혀 도덕적으로 무의미한 것들만이 식탁 위의 화두이다. 이런 상황에서 즐거움이 생길 수는 없다. 실현이 불가능하니 유토피아적이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모두가 동의한다면 유토피아의 식사자리를 우리 시대에 끌어다 놓을 수 있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즐거움도 금지되지 않는 분위기, 그것이 지속되는 세상. 과연 유토피아만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