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내일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고 사고의 한계이다. 미래예측 중 가장 정확도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일기예보조차 예보사실과 실제 기후가 달리 발생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경험적 존재에 불과하고 미래에 대해 수동적 존재인지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선택과 만족 또는 후회의 연속이 삶이다. 그런데, 승산이 없는 게임을 계속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은 경제적 관점에서는 무의미하지만, 도덕적 가치나 양심적 가치에서 유의미할 수 있다. 뱉어 놓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심의 결정과 의지의 실천을 위해 질 것 같아도 그 일을, 행위를, 길을 행하거나 걸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 길은 약속의 길이며, 내 삶의 표상의 길이다. 나의 정체성과 정의는 이름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오로지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 표현과 행위에 의해 규정된다. 좁게는 자존심의 발로일 수도 있고, 넓게는 표방한 공개적 계약 때문일수도 있다. 질 것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의외의 결과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요행에 불과할 수 있고, 진정으로 약속과 의지의 실행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
모두가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삶이란 치열한 경쟁이고, 어쩌면 총칼이 없는 전쟁과 같다. 자신을 무시하고 일과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의 삶은 결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아직도 가야 할 길'을 한발씩 걸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 대박과 쪽박. 무엇이든 결과는 행위의 종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만족과 후회라는 두 가지 주관적 수용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올바르다고 생각한 그 길을 걸었다면 그 길의 끝이 절벽이라 할지라도 수용하고 감내할 수 있으며, 적잖은 칭송이 따를 것이다. 요즘 너무나 약삭빠르고 이해타산적인 사람들을 많이 접한다. 정신을 지속적으로 긴장상태로 두지 않으면 나의 이익이 타인의 이익으로 대체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싶다. 죽음의 사자가 이름을 부를 때까지 온전한 목표와 계획으로 걷기로 한 길을 걸어갈 때, 수시로 참견하는 작은 손해와 피해, 비난과 모욕 정도는 무시할 수 있다. 어차피 너와 나의 길은 다르다. 너는 너의 길을 가거라. 나는 나의 길을 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