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평변호사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라는 것이 되어보니 내 부모의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을 듯 하다. 좋은 것, 맛난 것에 있어서 우선순위에 자식을 두게 되고, 나쁜 것, 형편없는 것에 있어서 우선순위에 자신을 두게 된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몸소 느꼈다면 나는 효심이 지극한 자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내 부모에 대한 나의 감정과 생각이라는 것의 전부가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만은 아니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7세 손자와 3세 손녀의 치닥거리만으로도 하루가 고단하기에 충분하고, 뼈마디가 시릴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깔끔하고 부지런한 성격 때문에 잠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구석구석 청소하고, 세끼 중 내 식사는 한끼만 준비해도 되지만, 손자, 손녀 때문에 세끼를 모두 차려야 한다. 게다가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서 먹지 않기 때문에 쫓아 다니면서 밥을 떠 먹어야 하는 난리도 겪어야 한다.
자식부부의 맞벌이는 어머니의 손자녀 돌봄을 통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고, 입맛에 맞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지없이 감사할 일이다. 게다가 도우미를 쓸 경우에 지출될 비용도 절감이 되고, 무엇보다 할머니이니까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나의 말과 행동이라는 것이 가끔 짜증섞인 그런 것일 경우가 많다.
손자녀가 원하는 것이 입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어머니는 5분 대기조보다 더 빨리 수행한다. "자꾸 이러니까 애들이 버릇이 없어진다니까요". 버럭하는 나의 대답이다. 예전 아버지처럼 엄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스스로 할 일을 구별하고, 스스로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머니가 방침의 일관성을 깨뜨리는 것 같아 나는 짜증을 부리게 된다.
나는 일찍 귀가할 때면 치킨, 족발, 구워먹을 삼겹살 등을 사들고 귀가하는 편이다. 저녁에 외식을 하기에는 둘째 녀석이 어둠에 대한 낯설움 때문에 온전히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고, 가급적 어머니나 집사람이 저녁 준비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 식구들은 대식가가 아니기 때문에 사들고 온 음식 중 일부는 늘 남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잔반처리를 도맡아 한다. 음식을 버리는 것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지난 음식을 먹고 나서 종종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활명수를 몇 병이나 마시고 끙끙대는 어머니를 보면 "그러게, 버리지. 그 몇 푼이나 한다고. 약값이 더 들겠다". 버럭하는 나의 대답이다.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와 집사람이 친모녀처럼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심문절차를 열 수 없으니 각각의 속사정은 알 수 없다. 집사람의 친어머니(장모)는 근처에 살고 계신다. 나는 사실 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양쪽의 눈치를 살피는 편이다. 어떤 일이 벌어져서 내가 판단하기에 비슷한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어머니에게 "그러게, 몇 번이나 말 했잖아요! 왜 자꾸 잊어버리고 쓸데없는 일을 해 가지고서는...". 버럭하는 나의 대답이다.
요즈음같은 시절에 며느리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은 통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고, 어머니에게 높은 비율의 책임을 지움으로써, 집사람과의 2차적 분쟁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나름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생각을 해 왔다.
이러한 평소 나의 행동과 말은, 부모가 되어 부모의 심정을 이해한 자의 모습이 아님을 깨닫는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상황에 맞닿으면 매번 어머니에게 '버럭' 짜증을 부린다. 처음부터 내 옆에 계속 있어왔던 너무 편한 존재여서일까. 사실 가장 먼저 소멸할 가능성이 높은 존재인데, 제한된 시간 속에서 한계적 존재라는 절실함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생활 속에서 매번 잊혀진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평생 속만 썩인 아버지 때문에 노후대책이라고는 전혀 없는 어머니가 나를 모시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그게 더 사실에 부합하는 듯 하다. 어머니가 나의 '버럭'과 짜증에 대해 함구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의 눈치를 살피고 갈등을 더 이상 키우지 않기 위한 나보다 더 지혜로운 처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자식에 대해 효용적인 잣대를 대지 않는 것처럼, 어머니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대어서는 안된다. 어머니와 나는 식성이 너무 다르다. 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회'를 떠서 퇴근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