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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

변호사칼럼

by 윤소평변호사

‘명탐정 코난’이라는 만화가 케이블 TV나 극장에서 방영되고 있는데, 명탐정 코난(영제 : Detective Conan)은 아오야마 고쇼 원작의 일본 만화로 1994년경부터 일본 주간지에 연재되다가 애니메이션은 1996년경부터 요미우리 TV 등에서 방송되었고, 국내에서는 2000년경 수입되어 케이블 TV나 극장에서 방영되고 있다.

그 내용은 시즌별, 회차별로 틀리지만 옴니버스 형식의 전제에 깔려 있는 대강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고등학생 탐정인 쿠도 신이치(한국명 : 남도일)가 어느 유원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귀가하던 길에 마주 친 검은 코트를 입은 사람들(‘검은 조직’)을 쫓아 수상한 현장을 목격하고 있던 중 검은 조직원으로부터 머리를 맞고 ‘검은 조직’이 개발한 약인 ‘APTX4869’를 강제로 먹고 부작용으로 7세 꼬마가 되어 버린다.

7세 꼬마가 된 남도일은 ‘코난’으로 신분을 위장해 탐정 모리 코고로(한국명 : 유명한)의 집에 신세를 지면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고, ‘검은 조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함과 동시에 탁월한 추리와 세세한 범행의 재연,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입증으로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살인사건 등을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무(?)에서 7세 꼬마의 추리와 입증이 높은 증명력을 얻기란 어렵기 때문에 이를 인식한 ‘코난’은 명쾌한 추리와 입증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년자들인 수사관이나 관계인들, 특히 피의자에게 직접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지 않고 마취제를 이용해 성년자이지만 다소 어리석은 탐정 유명한을 마취시켜 음성변조기를 통해 잠에 빠진 탐정 유명한으로 하여금 실체진실을 설명, 입증케 하는 ‘간접정범’의 구성요건형식을 취한다.

명탐정 코난에서 절도, 살인 등 여러 범죄유형이 연출되지만 단연 ‘코난’의 추리력과 입증방법이 돋보이는 것은 살인 중 ‘밀실살인’사건의 경우이다.

일단, ‘밀실살인’의 경우 수사의 개시여부가 문제가 되는데,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한계적 상황 때문에 자살이냐 타살이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만화 속 수사관, 탐정 유명한 등 엑스트라들(이하 ‘수사관 등’)은 대부분 자살로 추정하고 사건을 종결하려고 하거나 수사기관 입장에서도 골치아픈 사건을 더 맡느니 자살로 결론짓는 것이 업무량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론을 내는 것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코난’의 경우 세심한 범행현장의 관찰로 타살 가능성을 찾아내고 섣부른 판단을 내렸던 수사관 등에게 타살 가능성의 팁(Tip)을 제공한 뒤 수사관 등으로 하여금 수사를 개시토록 한다.

수사가 개시되면 수사관 등은 알리바이의 부재, 피해자와의 이해상반관계 등 예단개입 가능성이 큰 단서를 가지고 피의자를 특정해 가는 반면, ‘코난’은 그와 같은 단서를 토대로 하면서도 섣부른 피의자 지목을 삼가고 용의선상에 있는 피의자들 중 범행 가능성 내지 용이성이 큰 피의자를 내심으로 정한 뒤 증거수집에 들어가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일부 피의자가 진범을 보호하기 위해 허위 자백을 일삼은 경우에도 일단 무죄추정원칙에 입각해 객관적 증거수집절차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피해자 이외에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한계적 상황인 밀실 뒤에 숨겨진 실체를 찾기 위한 ‘코난’의 증거수집 활동과 완전범죄를 추구하는 범인 간의 대결구도가 극의 재미를 더 해 갈 때 쯤 ‘코난’은 진범이 설정해 놓은 트릭(범행방법)을 찾아낸다. 이 단계에 접어들어도 필자는 아둔해서 도중에 광고 장면이 나와 추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그 트릭이 무엇인지 알아 맞추지 못 하고, 그 다음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기다리기만 한다.

그런데, ‘코난’은 증거수집을 통해 범행방법을 알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좌중을 불러 모아 피의자를 지목하거나 사건의 실체를 설명하는 단계의 수순을 곧바로 밟지 않고, 수집된 증거를 통해 범행동기 등에 대해 다시금 신중히 검토한 뒤 자신의 추리에 신중을 더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필자는 이런 대목이 본받을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다음 ‘코난’은 마취제에 맞아 잠에 빠진 탐정 유명한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고 수집된 증거방법을 토대로 사건을 재현하는데, 범행방법의 재현, 범행수단의 제시 등 증거조사절차의 과정에서, 피의자인 진범은 각 증거조사단계, 각 증거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등 자기 방어권 행사에 여념이 없다.

‘코난’은 진범의 이의진술 등 부인취지의 진술에 대해 ‘믿기 어렵고, 믿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일축하지 않고, 진범의 진술을 끝까지 청취한 후 이에 대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하나씩 대어가면서 설득력있는 입증을 해 나가고, 이에 부가해 친절하게 범행동기와 범행 후의 사정까지 설명을 아끼지 않는데, 여기에 감복한 진범은 더 이상 혐의를 부인하지 않고 다소 떨리는 얼굴표정으로 안구에 습기를 머금은 채 범죄사실에 대해 자백을 하는 것으로 태도를 변경하게 되고 해당 회차분량은 마감을 한다.

변호사여서일까. 법정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저런 게 어딨어’라고 폄하하거나 실무와는 사뭇 다른 연출에 대해 ‘작가가 실무를 도통 모르는구만’하며 아마추어같다고 내심 비웃는 것이 필자의 대부분의 모습이었는데, 기실 ‘코난’이나 이상적으로 그려진 법정 드라마 등에서 연출되는 모습들이 법조인들이 실천해 나가야 할 모습이라고 가볍지 않게 충고를 하는 것 같아 실소를 아끼지 않았던 필자를 반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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