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인테리어의 한국 식당

입맛의 성장_두부찌개

by YS

티브이 앞에서 만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릴 때 가끔 부엌에서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가게에 가서 두부를 사 오라고 돈을 주셨다. 잘못하다가는 만화가 시작해 버리고 말 수도 있어서 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가게에 뛰어갔다 왔다. 맛도 없는 두부는 나의 평화로운 만화 시청을 방해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두부를 좋아하셨다. 나는 양념 맛이 사라지면 텅 빈듯한 밋밋한 두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두부요리인 두부 부침이나 두부조림은 잘 먹지 않았다. 다만 명란을 넣고 끓인 찌개에 들어 있는 두부는 명란과 함께 밥에 비벼 먹기를 좋아했다.

아버지가 두부를 좋아하는 바람에 수많은 두부 요리가 상에 올랐다. 두부조림이나 부침은 기본이고 두부찌개도 며칠에 한 번은 꼭 올라왔다. 그래도 내 입맛은 변하지 않았다. 상에 오른 두부를 하도 자주 봐서 두부 반찬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애정도 없었다. 두부는 그렇게 별 특징 없는 맛이 그냥 그런 음식이었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밥상이 차려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이십여 년을 보냈다. 그래서 내 입맛에 맞는 반찬에 대한 애정도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다만 김치중에는 오이소박이를 가장 좋아하고 비린내 나는 생선은 안 좋아한다고 알고 있었다. 매일 차려지는 대로 거부하지 않고 다 먹었다. 그런 집밥을 못 먹게 된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기숙사 2층에는 넓은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할 수 있는데 나는 주로 아침과 저녁에 이용했다.

기숙사 카페테리아는 뷔페식인데 음식은 기본적으로 메인 메뉴 하나 정도가 매일 바뀌고 나머지는 고정이었다. 즉, 샐러드, 시리얼, 도넛, 과일, 햄버거와 프렌치토스트는 항상 있었다. 다만 저녁이나 점심에는 오늘의 메뉴가 소고기 스튜나 스테이크 등으로 매일 바뀌었다. 나는 아침에는 프렌치토스트나 도넛을 먹고 저녁에는 그때그때 나오는 오늘의 메뉴를 먹거나 햄버거를 먹었다. 처음에는 우유와 시리얼도 여러 가지 종류이고 요구르트도 여러 가지 종류라서 그것들을 다 먹어보는 기쁨으로 카페테리아를 다녔다. 하지만 얼마나 지나자 기숙사뿐 아니라 학교 내의 모든 카페테리아가 거의 비슷한 메뉴를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어서 골라 먹는 즐거움이 사라졌다.


나와 학교 카페테리아와의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나자 나는 가끔 밖에 나가서 사 먹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밖에 나가도 달리 화려한 메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 옆 24시간 팬케이크 하우스에 가서 오믈렛이나 스테이크를 먹거나 아니면 중국 식당에 가서 탕수육 비슷한 고기튀김 요리와 볶음밥을 먹는 게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국 식당에 처음 가게 되었다.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한국 음식을 먹게 되는 날이었다. 한국 식당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시내의 한 복판 비즈니스 구역의 상가 건물 지하에 있었다. 전체적으로 내부가 붉은색의 나무기둥과 붉은색의 카펫 때문에 중국식당을 연상시켰다. 메뉴판도 있는데 영어로 적혀있었다.


비빔밥 말고 또 다른 몇 가지 메뉴들이 있었는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두부찌개였다. 웬일인지 두부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날 나는 두부찌개가 먹고 싶었다. 나는 두부찌개를 시켰다. 가락국수가 담겨 나올듯한 그을음 낀 납작한 스테인리스 냄비에 두부와 파가 들어간 빨간 국물의 두부찌개가 나왔다. 내가 상상했던 두부찌개의 맛은 얼큰한 국물에 밋밋한 두부 맛인데 내가 시킨 두부찌개도 딱 그랬다. 아버지가 항상 드시던 두부찌개 그대로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두부가 순두부와 그냥 두부의 중간쯤 정도로 말랑한 것뿐이다.

거의 이틀에 한 번은 상에 올라도 잘 먹지 않던 두부찌개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내게 다가왔다. 그 후 나는 그 한국 식당에 갈 때마다 두부찌개를 시켰다.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비빔밤이나 불고기를 시켰다. 하지만 나는 빨간 국물의 부드러운 두부가 들어간 찌개를 즐겼다. 두부찌개의 맛은 어릴 적부터 내가 느꼈던 양념이 지나간 뒤의 텅 빈 맛 그대로였다. 가끔 신기한 것은 한국 사람들도 나밖에 안 시키는 두부찌개를 옆 테이블에 미국사람이 잘 먹고 있는 거였다.


중국집 인테리어의 두부찌개를 팔던 한국 식당은 몇 년 후에 사라졌다. 마음 좋은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너무 오래전에 한국을 떠나서 김치볶음밥이 뭔지도 모르셨다. 단골이 된 우리가 가르쳐 준 대로 열심히 김치볶음밥도 만들어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은퇴를 하고 선교를 하러 가신다고 했다. 그 후에 미국이나 한국 어디에서도 나는 심심한 두부찌개 1인분을 사 먹을 수 없었다. 두부와 파만 들어간 빨간 국물의 두부찌개는 더 이상 내 주변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나의 두부찌개 사랑은 이후에 순두부로 이어졌다. 내가 공부했던 중서부 도시보다 화려하고 한국 식당이 즐비한 엘에이에는 순두부집이 유명했다.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순두부 메뉴가 너무 많아서 한 가지를 고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일단 고르기만 하면 금방 지은 밥과 보글거리는 순두부 뚝배기가 나왔다. 한국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는 회사 뒷골목에 있는 하얀 순두부를 파는 곳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두부전문 식당에 가면 파와 고춧가루 정도만 보이는 별거 없는 빨간 국물의 두부찌개가 나타나길 바랐다.


하지만 두부만 넣은 빨간 국물 찌개는 사라졌다. 그건 아마도 우리 아버지가 어릴 때 먹던 정말 오래된 방식의 찌개인 것 같았다. 금색 장식의 벽과 붉은 카펫이 깔려있던 한국 식당의 두부찌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아버지가 즐겨 먹던 찌개를 팔던 곳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버지가 왜 두부를 좋아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두부는 부침을 하던 찌개를 하던 화려하지 않은 맛이다. 두부의 맛이 밋밋한 게 아니었다. 두부 맛은 깔끔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