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의 성장_스파게티
기숙사에서 내 방을 나가면 공동으로 쓰는 라운지가 있었다. 거기에서는 아침저녁 시도 때도 없이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고픈 친구들은 한쪽에 있는 오븐과 그 앞에 있는 작은 주방에서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밤이나 주말에는 대체로 피자냄새나 팝콘 냄새가 가득 퍼졌다. 특히나 방안에 있어도 팝콘 냄새는 슬금슬금 방으로 들어왔다. 평일에는 주로 마카로니 치즈 냄새가 제일 많이 났다. 치즈가 녹으면서 나는 그 향기는 발효음식인 청국장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 나는 팝콘의 고소한 냄새도 좋지만 마카로니 치즈가 만들어질 때의 그 꼬리꼬리한 치즈 냄새가 좋았다.
내 앞 방에는 유난히 밝고 인사성 바른 친구가 살았다. 머리는 많이 꼬불거리고 안경을 끼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혼자 농담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친구였다. 그는 오전 수업을 갔다 오면 수박만큼 커다란 둥근 통을 가슴에 꼭 안고 라운지를 들낙 날락 거렸다. 그 통은 대부분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은 하나씩 필수로 가지고 있는 오븐에 돌릴 수 있는 통이다. 마카로니 치즈를 해 먹거나 팝콘을 돌릴 때 아주 유용했다.
뭔가 차분하지 않은 그의 성격상 오븐에 돌려놓은 음식을 찾으러 다니는데도 방문 열고 닫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 친구가 라운지를 들낙 거리며 해 먹는 요리는 별게 없었다. 먹다 남은 피자를 데워서 먹는 것과 마카로니 치즈 말고 다른 것은 본 적이 없다. 네모난 직사각형의 종이갑에 들어있는 마카로니 치즈가 없었다면 기숙사 오븐이 쉬지 않고 수시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 흔한 치즈마카로니를 한 번도 해먹은 적이 없다. 그보다 더 간편한 컵라면이 있어서 그랬다. 마카로니 치즈는 마카로니를 오븐에 삶아서 물을 버리고 그다음 치즈 가루를 뿌리고 또 돌려야 한다. 컵라면보다는 좀 많이 귀찮은 편이다. 짜장라면 정도의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또 하나 내가 마카로니 치즈를 해 먹지 않은 이유가 있다. 나는 옥수수 알갱이를 넣고 마요네즈를 버무린 차가운 마카로니를 좋아했다. 따뜻한 마카로니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는 보통 점심으로는 햄버거와 스파게티를 번갈아 먹었다. 학생회관 식당의 파스타 줄이 좀 더 짧아서 스파게티를 더 자주 먹었다. 줄이 짧은 이유는 맛이 없어서였다. 이미 다 삶아 놓은 국수에 소스를 부어주니 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게 미트소스를 스파게티가 아니라 원통형의 짧은 국수에 먹는 애들이었다. 스파게티와 달리 원통형의 짧은 국수는 그냥 포크로 찍어 한입씩 먹어도 편해 보였다. 나도 그걸 먹고 싶었지만 국수의 이름을 몰랐다.
소스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고기가 많이 든 뻑뻑한 미트소스를 골랐다. 그리고 면을 고르면 되는데 면은 스파게티를 골랐다. 동그란 원통면이나 꼬불하게 말린 면이 펜네나 푸실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다만 면들의 이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름을 물어보기도 창피했고 손가락으로 저거로 달라고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시키고 싶었다. 내가 아는 게 스파게티였으니 나는 자연스럽게 스파게티를 시켰다. 다행히도 스파게티는 항상 있었다. 물론 스파게티는 미리 삶아놔서 불어 있었다.
불은 면발의 스파게티와 뻑뻑한 미트소스를 참 많이 먹었다. 라면은 불면 먹지 못하지만 스파게티는 불어도 먹을 수 있었다. 불은 면에서 밀가루 냄새도 안 나고 맛있었다. 미지근한 소스에 불어 터진 면발이 무척 잘 어울렸다. 내 스파게티 사랑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펜네나 페투치니 등등 파스타의 이름을 알게 되었어도 나는 스파게티를 고집했다.
이제는 점심시간에 불지 않은 스파게티를 사 먹는다. 하지만 스파게티에 대해서 내 입맛은 까다로워지지 않았다. 생면에 해산물이 들은 고급 오일 파스타보다는 피자와 함께 나온 평범한 미트소스 스파게티가 맛있다. 집에서도 먹을 게 없으면 라면보다는 스파게티를 삶아서 이것저것 넣고 올리브오일에 볶아 먹는다. 스파게티가 친근하고 항상 먹고 싶은 건 아마 오래전 점심시간이면 항상 먹던 미트소스 스파게티가 주는 추억 때문일 것이다. 대단히 맛이 좋았던 것도 아니지만 내게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조미료보다 추억의 조미료가 제일 맛이 좋다. 사람에 따라서는 유행의 조미료를 가장 좋아할 수도 있다. 나는 추억의 조미료를 듬뿍 넣은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쨌든 두 조미료 맛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상상과 실제의 차이가 커서 막상 경험하면 실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