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맛

입맛의 성장_김밥

by YS


서늘하지만 피하고 싶지 않은 상쾌한 공기가 어머니가 마주 보고 있는 작은 창을 통해서 부엌 뒤쪽 담에서 들어왔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어머니 옆에 서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오래 서 있지 않고 내가 일어났음을 알리고 어머니가 해주는 아침 인사겸 뽀뽀와 포옹을 받고 학교 갈 준비를 하러 다시 방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일찍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나는 어머니의 손이 움직임을 따라서 보고 있는다. 까만 김이 도마 위에 놓이고 금방 지어서 살짝 식힌 윤기가 나는 쌀밥이 그 위로 올려진다. 한 주걱을 올려놓고 손으로 살살 밥을 펼치면 김 위의 삼분의 이는 덮인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색색의 재료가 길게 누워있는 쟁반에서 하나씩 밥 위로 얌전하게 놓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손놀림이다. 재료가 다 놓이면 김의 끝에 밥풀을 살살 으깨서 바른다. 그리고 드디어 재료를 손으로 누르고 밑에 있는 대나무 김발을 같이 쥐고 쓱 말아 올린다. 그러면 마술처럼 둥근 김밥이 김발 위에 놓인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다. 김발을 이용해서 말아진 김밥을 몇 번 꾹꾹 다시 누른다. 다시 김발이 펼쳐지면 검고 둥근 나의 김밥이 마침내 완성됐다.

피라미드처럼 밑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은 형태로 김밥이 쌓인다. 밥이 떨어지면 그때가 김밥 만들기를 멈추는 때였다. 모든 재료의 가짓수가 동일한 것이 아니어서 마지막 줄 김밥은 몇 가지 재료가 없거나 아니면 더 많이 들어가는 얇거나 뚱뚱한 김밥이었다. 어머니는 손바닥에 참기름을 바르고 쌓여 있는 김밥을 쓱쓱 만져서 참기름을 발랐다. 고소한 냄새가 반질거리는 검은 김밥 위에서 퍼져 나왔다. 그러면 내 입에서는 침이 나왔다. 어머니는 작은 그릇에 물을 떠놓고 도마 위에 김밥을 얹고 칼로 썰기 시작했다. 한두 줄 썰다가 중간중간 칼에 물을 한 번씩 묻히기도 한다. 나는 옆에 서서 동그란 그 덩어리가 살짝 풀어지거나 끄트머리가 모양새 없이 남는 것을 받아먹었다. 몇 번을 그러다 보면 어머니는 이제 그만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 소풍 도시락에 김밥이 가지런히 담기는 것을 보고 나서야 부엌을 나왔다.

내 연중행사에서 소풍이 없어진 나이가 되고는 어머니의 김밥을 먹어보질 못했다. 하지만 나도 김밥에 대해서 잊어버렸다. 나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 김밥의 세계가 아니라 삼겹살과 소맥의 세계로 들어갔다. 하지만 김밥이 영 내 곁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내 첫 직장에서는 출근하면 아침에 우유나 요구르트를 빵이나 은박지에 쌓인 김밥과 함께 파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 아주머니가 사무실을 한 바퀴 돌면 옆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먹는 동료를 보곤 했다. 그런데 책상 옆에서 풍겨오는 김밥 냄새가 전처럼 고소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침이던 점심시간이던 돈 주고 김밥을 사 먹는 것을 그렇게 즐기지 않았다. 꼭 먹어야 할 경우가 아니면 김밥을 사 먹는 일이 없었다. 맛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말은 김밥을 먹는다는 것에 긍정적인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내 고정관념에는 어머니가 말아주는 것이 김밥이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보편적이지 않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김밥 가게가 많이 생겼다. 저렴한 김밥도 있고 비싼 김밥도 있고 건강한 김밥도 있다. 모두 나름의 이유로 타깃 고객에 대한 확실한 어필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김밥을 사 먹지 않는다. 김밥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떤 김밥도 아직은 내 돈 내고 능동적으로 사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다. 생각해 보면 김밥에 대한 내 입맛이 더 까다로워진 것은 아니다. 김밥이 내게 줬던 그 모든 설레던 분위기와 상황이 다시 오지 않아서 먹지 않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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