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떡의 귀환

입맛의 성장_가래떡

by YS

겨울에 학교 갔다 오면 식탁 위와 부엌 바닥에 가래떡이 차곡차곡 엇갈리게 포개져서 탑처럼 쌓여있었다. 조금씩 사이를 띄워서 서로 붙지 않게 위로 쌓여있는데 떡을 썰기 전에 말리는 거였다. 광주리에 놓고 말리기도 했지만 낮에는 주로 식탁에 쌓아 놓고 말렸다.

나는 떡이 마르기 전에 먹는걸 더 좋아했다. 기다란 가래떡을 손가락 길이만큼으로 잘라서 간장과 참기름이 들어 있는 종지를 하나 갖다 놓고 찍어 먹는다. 쌀의 졸깃 거림도 좋지만 간장과 참기름 맛도 좋았다. 너무 물렁거리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게 쫄깃거리는 가래떡은 요리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맛있었다. 하지만 가래떡을 방앗간에서 만들어 온 날에만 먹을 수 있는 한정판이었다.

다음날만 되어도 떡은 딱딱해져서 굽지 않고 그냥 먹으면 나중에 턱이 아플 정도가 되었다. 단단해진 떡은 구워 먹기도 하지만 나는 그냥 간장과 참기름도 찍지 않고 조금씩 씹어 먹는 걸 즐겼다. 씹다 보면 쌀맛이 나는데 딱딱한 가래떡에서만 나는 맛이었다.


보통 떡을 만들어온 다음날 오후가 되면 할머니가 마루에 큰 도마를 놓고 떡을 썰기 시작했다. 옆에서 떡 써는 것을 구경하면서 타원형으로 나오는 떡을 하나씩 집어 먹기도 했다. 나는 떡을 써는 게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재미있어 보여서 떡을 썰어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할머니는 손 다친다고 나를 멀리 가게 했다. 나중에 좀 더 크고 나서 한번 체험해 보니 떡이 단단하기 때문에 힘을 들여 눌러가면서 요령껏 썰어야지 안 그러면 칼이 떡에 들어가지 않고 비켜나가서 손을 다칠 수가 있었다.

할머니는 팔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한번 앉으면 한참을 떡을 썰었다. 커다란 양동이에 가득 찰 때까지 썰고 또 썰었다. 너무 길게 타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그랗지도 않은 적당한 타원의 모양을 한 떡국떡이 할머니의 손에서 마술처럼 만들어졌다. 굵기도 크기도 일정한 타원형 떡국떡이었다. 그렇게 썰은 떡국떡은 겨울 내내 떡국을 끓여 먹고 가끔 라면에도 넣어서 먹었다. 어쩔 때는 김치찌개에도 넣었고 간장 떡볶이도 해 먹었다. 길었던 겨울 방학 동안 나를 즐겁게 해 주던 일종의 겨울용 별미였다.


내가 좀 더 커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는 쌀을 불려서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으로 만들어오는 일련의 가래떡 행사가 집안에서 점점 없어졌다. 떡국떡은 잘 썰어 놓은 것을 한두 번 먹을 분량만큼 시장이나 마트에서 팔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도 가래떡의 모습은 사라지고 떡국떡이 자리를 잡았다. 가끔 떡집 앞을 지나면 안 썰은 가래떡을 구워 먹기 좋을 정도로 몇 가닥을 파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 후로 수년이 흐른 어느 날 초겨울 길거리에서 연탄 불에 가래떡을 구워서 파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음, 저렇게 구워 먹던 가래떡이 있었구나" 하고 걸었다. 그때 내게 여러 가지 기억이 밀려왔다. 기억이 많은 건 행복한 시간이 많았던 거라는데 가래떡은 그랬다.


한동안 내가 돌아다니는 반경에서 가래떡을 마주 치치 못했다. 우연히 특별히 좋은 쌀로 만든 가래떡을 SNS에 광고하는 것을 보았다. 어릴 적 먹던 꾸덕하게 굳은 가래떡의 식감을 떠올리게 되었다. 가래떡은 어쩔 때 너무 굳으면 겉이 건조하게 말라서 터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직전의 가래떡은 겉은 단단하지만 안은 꾸덕하고 씹으면 쌀맛이 나고 굽지 않아도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가래떡을 주문했다.

배달되어 온 가래떡은 손가락 길이만큼 짧고 하나씩 포장된 가래떡이었다. 냉동실에 넣었다 녹여서 그냥 먹으니 젤리 같은 부드러운 쫀득거림에 쌀이 좋아서인지 맛도 향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단단함은 아니었다. 나는 세련된 포장의 맛 좋은 가래떡에 별로 손이 가지 않았다. 오래전 실종된 가래떡이 세련된 포장을 하고 그렇게 돌아왔지만 나는 왠지 서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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