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의 성장_소고기
나는 어릴 때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싫어서였다. 그나마 내가 먹던 고기는 할머니가 끓여주던 맑은 국물의 닭곰탕에 있는 닭 가슴살이었다. 후추가 뿌려져 있는 소금에 살을 찍어 먹으면 후추향이 화하면서도 고기가 부드럽게 녹으면서 목으로 넘어갔다. 또 하나 내가 좋아하던 고기 요리는 할머니가 간장을 넣고 조린 닭고기였다. 간장의 콤콤하면서도 달달한 냄새가 좋았다. 씹으면 쫄깃한 닭고기의 식감이 좋았다. 이 두 가지 고기 요리 외에는 다른 고기 요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장조림이나 갈비찜도 고기는 조연이고 국물이 더 좋았다. 아마 나는 고기 특유의 향이나 질감보다는 짭짤한 간장에 섞인 고기향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밥상에 불고기나 제육볶음이 올라와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소고기 요리 하나는 있었다. 바로 동그랗고 통통하면서 겉이 바삭하게 구워진 함박스테이크였다. 물론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내 몫으로 주어진 함박스테이크 접시를 한두 입 먹은 후에는 멀리 치웠다. 그래도 항상 처음 한두 입은 꼭 먹고 싶게 냄새도 모양도 좋았다. 특히 함박스테이크의 끝부분은 바삭하게 익어 있어서 고소한 맛이 났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새콤하고 달달한 케첩에 고기를 찍어 먹을 수 있는 거였다. 물론 가운데로 갈수록 고기 냄새가 나서 나는 다 먹지 않았는데 그걸 가족들은 좋아했다. 나 대신 내 몫의 고기를 먹을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 어느 순간부터 고기를 잘 먹기 시작했다. 심지어 소고기에서 나는 냄새가 좋아서 아무것도 뿌리지 않고 그냥 소금만 찍어서 소고기를 먹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굳이 불고기나 갈비찜으로 요리해 주는 것보다 양념 없는 고기를 구워주는 게 좋았다. 요리하는 게 귀찮아졌는지 아무튼 어머니도 더 이상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지 않았다. 케첩을 뿌려먹던 함박스테이크가 사라졌다. 대신 어머니는 로스구이라고 불고기보다 조금 두껍게 자른 기름기 없는 소고기를 구워줬다. 나는 그걸 참기름 뿌려진 소금에 찍어 먹는 게 가장 기다려지는 고기 요리가 되었다. 소금이랑 김치와 쌀밥만 있으면 로스구이랑 얼마든지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 요리였다.
한식에 별로 목을 메지 않았던 입맛 때문에 유학 생활 중에 식사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다. 우리 집 식탁에서 사라진 함박스테이크는 동네 홈메이드 버거집에 패티로 들어가 있었다. 맥도널드 햄버거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소고기 냄새가 햄버거 패티에서 났다. 나는 특별한 날에는 스테이크를 사 먹었다. 마트에 가서 고기 부위별로 이름을 보고 사 먹는 재미도 좋았다. 특히 뉴욕스트립은 로스구이를 먹는 느낌이 났다. 각종 스테이크 소스도 많지만 그냥 소금만 찍어서 먹는 스테이크가 제일 맛있었다.
한우나 소고기는 비싼 거라는 인식이 돈을 벌게 되면서 생겼다. 회식은 보통 돼지고기를 먹으러 갔다. 어느 날 일 때문에 남쪽 지방에 갔다. 소고기를 사주시던 사장님이 물 먹인 고기를 아냐고 내게 물었다. 고기를 구우면 보글보글 물이 올라오면 그건 물 먹인 고기라고 자기네 동네에는 그런 고기는 안 먹는다고 했다. 그날 먹은 소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화려한 식당도 아니었다. 그 후 물 먹인 고기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우를 구울 때 물이 나오는지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릴 땐 고기냄새가 싫어서 안 먹었는데 요즘은 고기 냄새 때문에 소고기를 먹는다. 그런데 한우는 잘 사 먹지 않는다. 일단 너무 비싸다. 게다가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먹으면 느끼하다. 상추와 쌈장을 넣고 먹으면 많이 먹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우는 소금을 찍어서 고기만 먹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 느끼하고 냄새도 고소하지 않다. 내 소고기 입맛은 저렴하게 수입 소고기에 맞춰져 있다. 소고기는 비주얼보다는 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