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의 첫날, 12월이 되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시작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12월이 된 것은 엄연한 사실, 나만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무심히 시간을 보내다 결국 부지불식간에 시간의 감각마저 상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득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스완이 연인 오데트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프루스트는 스완의 고뇌를 '행복'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지금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도 행복이라 표현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리하여 그 진정한 고뇌가 어찌나 달콤하게 느껴지는지
행복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만 같았다.
오데트가 그에게 그토록 중요해진 것도
어쩌면 그 고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우리를 위해 괴로워하거나 기뻐할 가능성이 있다고 느끼면,
그 사람은 마치 다른 우주에 속한다는 듯
시(詩)로 둘러싸이고 우리 삶은 감동적인 영역으로 변해,
우리는 그 영역에서 조금쯤 그 사람과 가까워진다.
스완은 오데트가 미래에
그에게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생각하자
불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