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나의 희망은 거창하지 않다. (중략)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나의 변화뿐이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내 모습. 그 모습을 희망할 수 있는 유일한 하루. 그날이 오늘임을 감사히 여길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던 일의 전부였음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아흔을 바라보는 작가이자, 일흔 넘어 번역을 시작해 200여 권 넘는 책을 펴낸 김욱의 산문집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은 열린다>에 나오는 글이다.
그냥 스치듯 넘어갈 수 있는데도, 나는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마치 내 속마음을 들킨 듯한 기분이었다고 할까. 이제 90살을 바라본다는 작가에 한참 못 미치는 나이지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예전에는 희망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뭘 이루고 싶다는 목표였다. 그 목표는 비교적 분명했다. 눈에 보이는 지위와 손에 쥘 수 있는 직업적인 출세, 즉 성공이었다. 하지만 공직을 떠난 지금,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더 이상 희망할 것도, 목표로 삼을 것도 없는 것일까.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조차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모른다. 작가의 말처럼, 희망은 멀리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 바로 내 삶과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고,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 이 삶을 향한 의지와 노력하는 모습이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매 순간 소중하지 않을 때가 없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도 없다. 물론 그중에 나도 당연히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