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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24. 2022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행운은 절대 영원하지 않아. 좋은 순간이 얼마나 오래갈지, 또 언제 올지 항상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인생은 후회로 가득해. 자네는 좋은 순간들을 인정하고 그에 감사하며 확신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네. 운을 시험해 봐."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탄자니아 출신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의 최신작 <그후의 삶>에 나오는 문장이다.

삶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줄지언정, 원하는 것을 다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적의를 드러낼 때도 있다. 물론 그 적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적으로 승화시키면 곧 누그러지거나 호의로 바뀔 수도 있고 성숙해질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삶은 우리에게 요구한다. 너에게 주어진 삶 자체를 인정하라고. 항상 감사하며 살라고. 그러나 연약한 인간인 우리는 그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감사하다가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눈앞에 펼쳐진 냉혹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할 때도 있다. 때로 그런 현실에 저항하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감사에도 총량이 있다면 그 양은 지극히 미미했고, 대부분 불평, 불만으로 채워졌다. 삶이 보인 적의 앞에 쉽게 무너지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후회스럽지만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날은 점점 저물어가고 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을지도 모르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큰 무기를 등에 업은 삶은 나를 그렇게 이겼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작품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무게를 떠나 우리에게 이런 비정한 현실을 일깨워준다. 그가 말하는 문학이 갖는 힘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별게 아닌 교훈이지만 그걸 스토리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의 삶이 지닌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말한다. '진실된 글쓰기라면, 인간의 양면성을 모두 다루어야 한다. 불공정과 잔혹함 같은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있는 사랑과 따뜻함, 친절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구르나 같이 삶의 민낯을 솔직히 드러내는 작가를 좋아한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부조리와 불편한 진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실상을 문학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환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교훈은 그런 사실이 뒷받침될 때 힘을 갖는다고 믿고 있다.


"이 시대에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게 문학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대에는 저마다 위기가 있었지만 인간 사회는 그걸 그들만의 방식으로 대처하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문학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든 내 생각만 중요하다고 우기는 사람들, 자신의 실상을 자각하지 못한 채 마치 뜬구름에 올라가 있는 양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생각도 고민도 없이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는 그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책을, 무엇보다 문학작품을 읽는다고 인생의 답이 찾아지는 건 아니다. 외로움이 해소되거나 저절로 사람답게 살아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더 외롭고, 더 답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거기에 문학의 의미가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나라는 사람의, 무엇보다 내 삶의 실체를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이다. 삶은 결국 혼자라는 것, 어떤 정답도 없다는 것, 지금까지 내 시선을 가리고 있는 거품으로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해준다. 그 실패 위에서만, 내 삶에 낀 그 거품을 제거해야지만 우리는 비로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지난 시절, 후회로 가득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순간들, 행복했던 시간들 또한 분명히 있었다. 항상 감사하며 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짧았지만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만이라도 기억해서 감사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 '별게 없더라'가 아닌 살아봤더니 '그래도 좋았더라'가 되게 하는 건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의 말처럼 뒤를 돌아보며 이해하고 앞을 보며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 또한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 삶이 무작위적이고 불분명하며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을 먼저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대신 자신이 통제하고 바꿀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래야 삶이 순조로울 거라고."


오랜만에 걸었던 덕수궁 돌담길, 이 길은 언제 걸어도 아름답고 운치가 있다. 우아하고 기품있는 여인을 닮았다고나 할까. 산들바람에 실린 봄의 향기마저 더해져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길 바라지만,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외로움을 메꿀 수 없듯이 그 무엇도 인간의 외로움을 채울 수 없다. 문학은 이 사실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문학을 삶에 필연적이게 한다.”


<데이비드 실즈(David Shields) _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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