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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흔적만 남기고

by 서영수

설 연휴, 부모님을 뵙고 온 날을 제외하면 집에서 책을 읽거나 집 근처를 산책하며 보냈다. 부모님 댁에도 지하철을 이용해 다녀왔으니, 결국 대부분 걸어 다닌 셈이다. 연휴 동안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특히 전철 안과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밝은 표정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어두운 얼굴이 더 눈에 띄었다. 잿빛 하늘 아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걷는 사람들의 얼굴엔 피로와 무거운 기색이 스며 있었다. 어쩌면 겨울 풍경이 주는 삭막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비교적 따뜻했던 날씨가 이번 명절엔 눈과 함께 매서운 추위를 몰고 왔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두꺼운 옷깃을 여미며 추위에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었다.


연휴에도 고향에 가지 못한 외국인, 특히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곳곳에 보였다. 마치 목적지도 없이 거리를 떠도는 것 같아 더욱 쓸쓸해 보였다. 명절을 맞아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관광객과 외지인들이 차지한 것이다. 전철 안의 나이 든 사람들은 힘없이,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었다. 몸이 불편한 것인지, 그저 기운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게 이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


세월이 흐르면서 명절의 전통적 의미도 점차 희미해졌다. 예전에는 설렘과 따뜻함으로 가득했던 명절이 이제는 점점 낡아가는 유행가처럼 진부하게 느껴진다. 가부장제가 무너지고 1인 가구가 늘어난 요즘, 명절은 어쩌면 시대에 뒤처진 관습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길 위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보며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쓸쓸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말없이 감내하고 있는 삶의 무게가 전해져서일지도. 누구나 결국 노년을 맞이하고,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모두 말은 하지 않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묘한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긴 명절 연휴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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