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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06. 2022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가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 주인공 염미정이 혼자 이렇게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가 아닐까요?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진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가 아닐까요?


생각해 보면 좋기만 한 사람이 없어서이지 않을까? 그래서 채워지지 않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좋아해도 항상 좋을 수는 없다. 싫은 부분도 분명히 있는 거다. 관계는 그 부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렸으니 싫은 부분을 자꾸 줄여가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의지이자 노력임이 분명하다.

더워서 어제는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돌체 라떼를 주문했다. 원래 커피는 따뜻하게 시럽이나 설탕 없이 디카페인으로 마셨는데, 오늘은 왠지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것을 마시고 싶었다. 역시나 돌체 시럽의 진한 단맛 때문인지 커피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아이스커피니 당연히 향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내가 지금 커피를 마시는 건지 아니면 음료수를 마시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커피의 고장이라는 이태리나 프랑스는 아이스커피가 없는 곳이 많다고 한다. 누가 커피를 차갑게 마시냐고, 커피 본연의 향과 맛을 음미하지 않을 바에는 뭐 하러 커피를 마시냐는 거다. 사실 차나 커피를 뜨겁게 마시는 이유는 천천히 식혀가면서 잠시나마 여유를 찾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스커피는 그 반대다. 한 여름 시원한 걸 마시고 싶을 때 요긴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필요한 카페인을 채워 넣기 위해, 빨리 마시기 위해 최적화된 음료로서만 기능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이스커피는 커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리하긴 하다. 후루룩 마시고 일이나 공부를 하기에 이만한 음료가 없으니까. 물론 그것도 필요한 때가 있긴 하지만.


나도 그런 뜻에 깊이 공감하고 한 여름에도 고집스럽게 약간의 우유만을 넣은 뜨거운 커피를 마셨던 거다. 한편 아이스커피를 마시면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고, 얼음으로 대부분이 채워진 커피 잔을 보면 뭔가 손해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커피에 들어가는 시럽이나 설탕은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흡수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커피를 즐기려면 적당히 넣으시길!!

커피를 마시면서 최근에 본 <나의 해방일지>의 대사가 떠올라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항상 좋을 수만은 없는 관계,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좋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쁜 점, 약점이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시작점이다.


오래 산 부부들을 보면 대화 자체가 없는 데다가 대화를 해도 그다지 정겨운 말이 오가지 않는다. 그냥 귀찮을 뿐, 무슨 말을 해도 별로다. 관심사가 서로 달라 공감할 부분이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다. 이심전심이라고? 글쎄? 그건 오랜 세월을 함께 산 데서 오는 익숙함과는 다른 게 아닐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들도 처음에는 좋았을 텐데. 헤어지기 싫어서,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 붙잡고 싶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런 마음이 더 이상 들지 않는다. 약점과 단점이 장점을 흡수해 버리고, 이젠 오직 그의 한심한 부분만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도.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웬 사설이 기냐고? 그러게 말이다. 그냥 평소 마시던 커피를 주문할 걸, 지금 무척 후회하고 있다. 이미 거의 다 마셔서(정말 순식간에 마시고 말았다)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관계도 한 번 어긋나면 아무리 후회한들 다시 좋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듯이.




사람이 완벽할 수 없지만 우리는 사랑하기 시작할 때 가급적 완벽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화가 나도 참고 마치 성격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고, 돈이 없어도 있는 척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피곤한 데도 늦은 시간 그 사람의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하고, 모두 상대의 마음을 사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행동들이다. 그건 사실 좋은 거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 오히려 그게 행복이고 삶의 즐거움이다.


문제는 그런 면만 보고 ‘이 사람 좋은 사람이구나’ 착각하면 안 된다는 거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러니 나중에 ‘왜 그때와 다르게 변했느냐’고 탓하지 말기를. 변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인데, 그때와 달리 이젠 그러지 않는 것일 뿐. 그래도 속상하다고. 그러게. 나도 속상하다. 우리는 왜 일관된 삶의 자세를 지키지 못하는지 말이다. 감정도 기복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처음에는 다 좋다. 별로인 점도 좋게 보인다. 장점이 약점을 커버하기도 하고, 약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소심하거나 우유부단한 건 사려 깊은 성격으로, 화를 잘 내는 건 정의로운 것으로, 거친 언행은 남성적인 것으로, 속칭 공주병은 섬세한 성격으로 내 눈에 비친다.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는 건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일 게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감정만으로 그를 대하지 않고, 어느 정도 분별력을 갖추어 보기 시작하면 방금 말한 모든 것은 이제 나쁜 점, 약점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아까 말한 대로 평소 마시던 커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커피가 씁쓸하고 산미가 느껴진다고 시럽이나 설탕을 많이 넣어서는 안 된다. 커피는 원래 그런 거다. 그 사람도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 그런 마음이 든다면 부디 그대의 시선을 바꾸기를, 원래 가졌던 그 시절의 따뜻하고 너그러운 시선을 회복할 수 있기를.


그러니 이 복잡한 관계의 역학 속에서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일은 경우에 따라 어떤 위험과 오해로 돌아올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애정을 드러내는 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라는 의지의 표명이자, '~불구하고'라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랑은 그 사람에게 약점이 많아도 ‘아무런 조건 없이’ 좋아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제는 낮에 걷기가 좀 덥다. 그래도 동네 산책은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일상, 건너뛸 수가 없었다. 저 조형물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으면,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서있는 조형물 앞에서 내가 심히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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