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연휴, 사람들이 덜 붐비는 늦은 저녁 시간에 고궁을 산책했습니다.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못했던 풍경을 조금 더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며 걸었습니다. 밤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로 붐볐습니다. 왜 우리는 옛 건물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요? 아마도 모든 것들을 품는 '여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빈틈없이 채워진 거대하고 화려한 고층 빌딩 옆에 있으면 압도당하지만, 고궁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것도 바로 그 여백 때문입니다. 편리와 효율성보다는 사람들의 동선을 고려한 배치, 여유 있게 남겨진 공간, 낮게 드리운 처마, 거리를 둔 채 서 있는 기둥들. 그 빈자리가 우리 안의 숨 쉴 틈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궁 근처를 걷고 나면, 어느새 달라진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이 조금 더 너그러워졌고, 시선은 그전보다 넓어졌습니다. 산책을 하기 전의 나와 후의 내가 정말 같은 사람인지,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내면의 풍경이 사뭇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묵묵히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고궁의 모습 속에 저 자신을 비춰보게 되었던 것이지요.
산책하면서 사색하는 것을 즐겼던 스위스 출신 작가 로베르트 발저는 <산책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다시 나 자신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종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그 다른 사람이 바로 내가 잃었다가 찾고 싶었던, 내가 되고자 했던 그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라고 저는 받아들입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수수께끼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곱씹어 보면 맞는 말입니다.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세상도 우리에게 마음을 내어줍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상대도 마음을 열게 됩니다. 진정한 관계는 먼저 내미는 손끝, 진심 어린 따뜻한 눈빛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고궁 근처를 산책하면서 고궁이 겪었던 풍상과 사연을 더 잘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건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아니라, 고궁이 품고 있는 시간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조심스레 다가갈 때, 오랜 침묵 속에 있던 고궁이 먼저 말을 걸어올지도 모릅니다. 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세상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