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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계절

by 서영수

크리스마스를 앞둔 빵집은 늘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성탄 케이크를 고르는 손길들로 분주하지만, 계산대 앞의 표정은 사뭇 지쳐 있다. 자주 보던 점원은 고단함을 애써 어색한 미소로 지우며 서둘러 빵을 포장한다. 하루 종일 같은 일을 하며 보냈을 시간이 표정에 그대로 묻어 있다. 줄이 너무 길어 잠시 망설이다가, 어차피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체념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무료한 시간 동안 깨달은 점은, 누군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준비하지만 같은 그 자리에서도 지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이 붙은 날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따뜻한 것은 아니다. 한때 나도 이 계절을 견뎌야 할 시간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불빛은 지나치게 밝았고, 연말연시, 성탄절을 축하하는 말들은 과잉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그때만큼 힘들지 않지만, 그 차이가 회복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감각을 덜어낸 결과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빵을 들고 나오니, 건물과 거리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달리 하늘은 흐린 회색빛이다.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시간과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에 대해 말하던 문장.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축적하며 살아간다. 기억은 쌓이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고, 남은 자리는 설명할 수 없는 공백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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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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