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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18. 2022

나는 왜 종이책을 읽는가

어제 올린 글과 관련해서 언급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 글은 힘들고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서 나를 극복한 경험담이다. 그 글을 통해 책이 힘든 순간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지금 읽고 있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종이책으로 읽고 있다. 분량이 너무 많아 전자책으로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고전 또는 장편은 전자책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아서 종이책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고전 문학을 가까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이책을 읽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도 한때 아이패드, 킨들 등으로 전자책을 읽은 적도 있다. 하지만 아이패드로는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메일을 확인하는 정도고, 책은 종이책으로 읽는 편이다.


그럼 나는 왜 간편하고 보관이 쉬운 전자책 대신 여전히 종이책을 읽고 있는가. 무엇보다 책이 사라져 가는 시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나는 왜 종이책을 붙들고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어제도 언급했던 김무곤 교수의 <종이책 읽기를 권함>에 이 부분이 잘 설명되어 있다. 그는 말한다. "종이책은 무한 에너지를 가진 매체이다. 충전시키지 않아도 되고, 콘센트에 꽂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영원한 배터리를 품고 있다. 그리고 모든 매체가 집단 매체에서 개인 매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지금, 책은 근대 태동기부터 혼자서 읽고 싶을 때 읽고, 덮고 싶을 때 덮을 수 있는 개인 매체였다.


종이책의 또 다른 매력은 인간의 감각을 다양하게 자극하는 매체라는 점이다. 책 읽는 깊은 고통 뒤에 따라오는 쾌락, 스르륵 넘어가는 종이 책장의 소리, 향긋한 종이 냄새, 책장을 넘길 때 느끼는 손맛의 짜릿함. 이토록 다양하게 감각을 자극하는 매체는 흔하지 않다."


그의 말에 의하면 종이책은 ‘선택성’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대안 중에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고를 수 있다. 케이블 TV와 위성방송의 등장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기껏 수십 개, 많아도 수백 개의 채널뿐이고 인터넷의 경우에도 검색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그러나 책은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만 해도 2021년 현재 소장도서가 1,300만 권이 넘는다. 그리고 어딜 가도 도서관이 없는 곳이 없다. 마음에 드는 책을 사면 추가로 검색할 필요도 없다. (한 권의 책 속에는 정보 면에서 나한테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그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부분 때문에 본질이 풍요로워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여, 불필요한 부분은 없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게다가 신문이나 방송, 영화와 달리 책은 지면이나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영화는 대개 2시간, 방송 드라마도 대개 1시간 내외의 시간 분량 때문에 다루지 못하는 내용들이 많지만, 책은 내용이 많으면 두께를 늘리면 된다.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원작만 한 영화가 그렇게 많지 않은 건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2시간 분량으로 영상화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종이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고 영상에 비해 재미도 크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책은 걷는 것과 비슷하다. 걷는 건 건강에는 좋지만 오래 걸으면 힘들고 피곤하다. 자동차 등 각종 운송수단이 발달한 요즘, 누가 힘들게 걷는다는 말인가. 걷지 않으면 편하지만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과거 앞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비해 현대인들이 다양한 질병과 질환에 시달리는 것도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수명은 늘었지만 건강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TV를 비롯한 인터넷,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SNS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시간적으로 매우 효율적이다. 반면 책은 글자로만 이루어져 있어 읽으려면 일단 힘이 든다. 영상매체에 비해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영상은 그냥 켜놓고 흘러가는 대로 보면 그만이지만 책은 다르다.


어려운 구절이나 문장 앞에서는 이게 무슨 말인가 고민해야 하고, 앞뒤 문맥의 의미와 줄거리를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한마디로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책 읽기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약점이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고민하고 힘들게 읽으면서 흐트러진 내 삶의 자세가 다듬어지기도 한다.


요즘 세대가 주어진 건 잘하지만 주도해야 하는 것은 약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이 차이가 아닐까. 고통을 겪어야 내 것이 될 수 있는데, 우리는 고통스러우면 일단 피하고 본다. 타조가 천적을 피해 모래에 머리를 처박듯이, 내가 못 본다고 현상이 없어지는 건 아닌데 말이다.




왜 굳이 고통을 자초해야 하는가. 왜 참고 인내해야 하는가. 그래야만 내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고통스럽지 않으면 도저히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타조와 다를 바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능력, 그건 내 상상력과 생각을 자극하는 책을 통해서라고 나는 믿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린 그것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어려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 순간을 인내해야 한다. 그 인내의 힘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마음과 능력이 단련되는 것이다. 안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만다.


요즘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전 연령에서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YouTube)를 많이 본다. 골라서 볼 수도 있고, 길어야 20분 남짓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요약해서 정리해 주니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이고 재미도 있다. 넷플릭스에서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물 <오징어게임>도 유튜브 요약 방송으로 보면 1시간 이내에 다 정리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보고 나면 어떤가. 그 순간뿐이지 않은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과 영상매체와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만큼 사고가 깊어진다. 여기에 책의 효용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 더, 책은 시간과 세월을 뛰어넘는다. 성경만 해도 나온 지 천년이 넘었다. 그 외에도 과거에 나온 수많은 책들이 여전히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다. 그런데 영상은, 영화는? 영화가 나온 지 불과 100년 되었을까. 초창기 나온 영화를 우리가 보는가? 접근 가능성이 없기도 하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보진 않는다. 불과 몇 년 전에 나온 영화조차도 이제는 잘 보지 않는다. 세월과 함께 사라지는 책들도 분명히 있지만 세월을 건너뛰어 살아남는 책들이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 전자책은? 이건 참 어려운 문제다. 전자책도 종이책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전자책을 몇 번 보긴 했지만 자주 보지 않아서 과연 종이책보다 나은지, 아니면 종이책이 나은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영상으로 된 전자책은 종이책만큼 기억에 많이 남지 않는 것 같다. 읽다가 책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기에도 종이책만 한 것이 없다. 하지만 전자책도 책의 일종이기 때문에 각자 취향과 성향에 맞춰 종이책을 봐도 되고 전자책을 봐도 된다.


다시 김무곤 교수의 말이다.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일에 비해 책 읽기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통제해야 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책은 TV 화면을 보는 행위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듣는 행위와는 달리, 사람의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다.


책을 읽는 일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일이며,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공임을 스스로 깨닫는 일이다. 그것은 때로 귀찮고 힘든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더욱 인간으로 태어난 지고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일이다. 그 고통을 넘어서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온전하게 다 읽은 자는 온전히 그 책의 주인이 된다. 하품과 잠과 고통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책을 읽을 때, 책 읽는 사람은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된다."



김무곤 교수의 말과 같은 이유로 나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책을 읽어야만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진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어떤 사람은 전자책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유튜브, 인스타그램(Instagram)이나 틱톡(TiKToK) 같은 동영상이 더 와닿을 수 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취향의 문제, 선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보면 되는 것이다.


다만, 내 경험상 다른 수단보다 책이 생각을 깊게 하거나 좀 더 창조적인 생각을 하게 하거나 인내력을 키우는데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내 주관적인 의견에 대해 편협하다고, 고루하다고 하지 마시기를.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앞 페이지의 내용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지탱해야만 뒤에 나오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 사람은 정신의 팽팽한 탄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정신의 팽팽한 탄력을 밀고 가는 힘, 이 지탱력이야말로 사람이 오직 책 읽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것의 다른 이름이 바로 지성(知性)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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