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웃지 않을 수 없어서 슬픈

<웃는 남자>

by 서영수

몇 년 전,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읽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문장은 길고, 비유와 인용은 촘촘했으며, 배경이 되는 시대 역시 낯설었습니다. 몇 번이나 책장을 덮었다가 다시 펼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쉽게 읽히지 않는 이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주인공 그윈플레인은 항상 웃고 있습니다. 아니, 웃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입이 찢긴 채로 버려진 그는 평생 그 표정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웃고, 그는 사람들을 웃깁니다. 그러나 그 웃음이 기쁨이 아니라 상처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 얼굴을 함부로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며 안심해 왔을까요.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로, 그 웃음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외면해 온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 묻게 되었습니다.




그윈플레인의 곁에는 데아가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는 오히려 그를 가장 정확히 이해하는 인물입니다. 데아는 그의 얼굴이 아니라 목소리와 숨결을 사랑합니다. 보지 못하기에 더 깊이 볼 수 있었던 그녀를 통해 위고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이 무엇인지 조용히 보여줍니다.


작품 속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아무리 위험한 순간에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희망의 꿈틀거림이 빛을 잃지 않는다면, 그는 조난자가 아니다."


그윈플레인의 삶은 잔혹하지만, 그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온전히 바라봐 준다는 사실은 한 사람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됩니다.




『웃는 남자』는 사회의 위선을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게는 무엇보다 인간을 끝까지 인간으로 남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신분은 바뀔 수 있고, 얼굴은 훼손될 수 있지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과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만큼이나 이 책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물들은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특히 웃고 있는 그윈플레인의 얼굴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 얼굴을 오래 상상하면서, 결국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타인의 표정이 아니라 제 자신의 시선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어쩌면 이 소설은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깊이 보고 있는지, 그리고 누군가의 상처를 웃음으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읽고 난 뒤 한동안 사람들의 얼굴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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