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는데, 그 사람이 나 없이도 잘 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도대체 저 사람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는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이미 힘든 마음이 더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이별은 흔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이 흔하다는 사실과 그 상실을 어떻게 견디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힌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것이지요.
또 어떤 사람은 바쁘게 살다 보면 상실의 아픔도 서서히 무뎌진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말들이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때일수록 무엇이든 붙잡을 것이 필요합니다. 글을 쓰든, 일을 하든, 누군가를 만나든, 아니면 그저 묵묵히 하루를 버티든 말이지요. 상실의 감정은 그냥 두면 점점 더 커지지만, 어딘가에 기대어 조금씩 흘려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모습으로 남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상실감도 조금씩 견딜 만한 것이 되어 갑니다.
시인 박준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슬픔을 일부러 자랑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어야 할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사랑했기 때문에 생겨난 슬픔이라면, 그 슬픔 역시 그 사람의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슬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 가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사랑과 이별이라는 형식을 통해서요. 삭막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것은 깊은 아픔이지만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킨다면 그 상실의 아픔도 때로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