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새벽부터 흐리다가 바람이 불고, 이내 비까지 내렸습니다. 며칠전만 해도 비바람이 이렇게 몰아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봄날은 원래 변화무쌍하다고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날씨에 자칫 컨디션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바람에 실려오는 공기 속에는 분명 봄기운이 묻어 있습니다. 햇살 역시 한겨울과는 다릅니다. 자연은 언제나 제 시간을 지키며 계절을 순환시키고 있습니다.
날씨를 보며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자연은 제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나도 과연 그런지, 계절은 분명 바뀌고 있는데 마음은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를요.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늘 쫓기듯 살아갑니다. 해야 할 일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지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점점 여유를 잃고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가며,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무겁게 만드는 일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환경이나 상황보다 더 큰 문제는 결국 마음인 것 같습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오후가 되니 바람에 씻겨 나간 듯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하늘처럼, 어쩌면 우리 마음도 그런 순간을 통해 비로소 맑아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명이 발전하고 삶이 편리해졌지만, 그것이 곧 마음의 여유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나은 삶,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지금 이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해야겠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마도 속도를 조금 늦추고, 주변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주변에는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포함됩니다. 세상을 관조하듯 바라보며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춘다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풍요로워집니다.
결국 문제는 외부의 상황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입니다. 비관적인 생각, 부정적인 시선, 지레 포기해 버리는 마음이 쌓일수록 세상은 실제보다 더 어둡게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마주한 이 맑은 하늘은 어제와 다른 삶을 살라는 하나의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괜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무겁게 만들지 말라는 자연의 조용한 권유처럼 보입니다. 오늘의 맑음이 내일까지 이어지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제의 흐림이 오늘까지 계속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매 순간 지금 보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늘이 맑으면 '오늘 하늘이 참 맑다'고 느끼면 됩니다. 이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충만해집니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해서 저절로 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봄은 누리는 사람에게 비로소 봄이 됩니다.
박남준 시인의 시처럼 우리 삶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처럼 어김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어김없이 봄은 오고
너는 피어났다
삶이 저렇게
어김없는 것이었다면
— 박남준, 「민들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