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 가까워질수록 남는 것들

by 서영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집 안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겉으로는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어딘가가 비어 있다는 느낌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혼자 남으신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 변화가 뚜렷해집니다.


예전보다 말수가 줄어드셨고 기운도 눈에 띄게 약해지셨습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있으신 것은 아닌데 전반적으로 조금씩 기력이 쇠해지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막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이 점점 더 피부에 와닿습니다. 사람은 때가 되면 결국 자신의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예전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제 삶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일이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미뤄두었던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제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떤 모습으로 그 끝을 맞이하게 될까요?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조금씩 쌓여 결국 마지막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죽음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금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의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입니다. 그는 삶의 마지막에 가까워졌을 때 행복의 기준이 할 일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고 기대할 것이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분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왔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상태에서도 현재를 즐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떠오르는 것은 좋았던 순간들이라고 했습니다. 창밖의 나무와 계절의 변화, 사소했던 장면들 모두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삶은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세월의 축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에는 삶의 마지막을 앞둔 사람 특유의 어떤 조급함이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끝을 회피하려고 하기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시간을 포함하여 지금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 얼마나 더 이루어야 하는지, 지금 이 선택이 손해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따지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쌓아 올린 것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끝에 가까워질수록 남는 것은 전혀 다른 것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떤 순간에 기쁨을 느꼈는지, 무엇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는지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이것 하나입니다. 저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쌓여 언젠가 저의 마지막을 만들 것입니다. 죽음을 따로 준비할 수는 없지만 삶의 태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바라보며 저는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떠올립니다. 그래서 죽음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통해 조금씩 완성해 가는 제 삶의 또 다른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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