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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03. 2022

패션은 드레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옷으로 여성에게 자유를 선물한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1883 - 1971) ‘코코’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녀의 일생은 ‘사랑하고 일했다’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녀에게 패션은 단순히 옷을 잘 입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나치에 부역했다는 논란도 함께 받고 있는 샤넬.


샤넬은 이렇게 말했다. "패션은 바람에 깃들어 공기 중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패션을 느끼고 또 들이마신다. 패션은 드레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길거리에도 있으며 우리의 생각, 삶의 방식, 일어나는 모든 일과 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살면서 접하는 모든 것이 패션이라는 말이다. 샤넬의 말대로라면 눈에 보이는 옷이나 장신구만 패션이 아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것, 좋은 책을 읽는 것, 그렇게 음악과 책, 그림을 통해 내면이 풍요로워지고 화려해지는 것 역시 패션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생각을 갖는 것까지도.


외모의 화려함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하거나 사라지지만, 내면을 채운 화려함은 시간에 따라 오히려 점점 더 공고해진다. 성형 수술을 한 외모의 부자연스러움과는 달리 내면의 화려함은 자연스럽다. 내면의 빛은 눈빛과 태도와 자세를 지배하고, 그게 쌓여 품격이 되고 품위가 있는 우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아하다는 것은 고상하며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고 세련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아함을 갖춘 사람은 한마디로 삶의 '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샤넬은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을 보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액세서리는 떼어 버리라!!" 가장 빛나야 할 것은 액세서리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과도함은 우아함의 최대의 적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액세서리만이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불필요한 액세서리가 사실은 더 문제다.


얼굴이나 몸을 화려하게 꾸몄다고, 스펙이 좋다고 해서 고상함이나 우아함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기품이 있다거나 아름다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샤넬이 말한 패션이 드레스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각, 삶의 방식, 일어나는 모든 일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의 의미가 나는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면이 화려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남들과 다른 시선을 갖는 것,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며 사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본다. 당연히 삶을 보는 시선 자체가 화려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과거부터 인간은 내면의 빛보다 외면의 화려함을 더 추구했고 그 풍조를 따랐다. 손쉽게 남들과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면을 화려하게 가꾸고 싶어도 그건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쉽게 얻어지지도 않는다. 힘든 건 피하고 싶으니 당연히 좀 더 손쉽게 남들보다 비교 우위에 서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외면의 화려함을 위해서 빚을 내서라도 주식을 하고, 좋은 차를 타고, 주말마다 골프장도 가고 그러는 거다. 골프장에 가보면 예전과 달리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골프가 대중화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 이유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말, 화려한 골프복을 입고 라운딩을 하면 폼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벌의 옷을 준비해서 홀이 바뀔 때마다 갈아입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다고 한다. 골프가 목적이 아니라 명품 골프복을 입고 전망 좋은 골프장에서 내가 골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다. 뭔가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름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유가 되면 그렇게 살 수도 있는 거지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볼 이유는 없다. 다만 외적인 면을 중시하는 만큼 내면을 가꾸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모든 것을 갖춘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뭔가에 집중하면 그것 때문에 잃는 것이 분명히 있다.




언젠가 여기에 썼듯이, 세상 관심사로 분주하면, 지금 사는 것이 무척 즐겁다면, 생각하는 데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내가 즐거운데 굳이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엇보다 삶의 고통에 대해 생각할 이유가 없다. 불러주는 사람들이 많고, 어딜 가든지 주목받는다면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내 시선은 왜곡되어버린다.


꼭 세상이 끝난 것처럼 인상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만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다른 사람의 여유로운 삶을 비난한다면 그가 질시하는 사람들보다 못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세상이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것,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어제 늦은 밤,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이번 주 새로 발매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문장을 마음에 새긴다면,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듣고 가사를 음미해 내 경험으로 내면화시킨다면 그것도 화려한 삶이라고. 한 곡의 음악에 너무 의미를 부여한다고? 나는 가끔 그런다. 가끔 지나쳐서 문제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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