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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08. 2022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는지

박완서 / 한 말씀만 하소서

오늘은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듣게 된 작고한 故 박완서 선생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목>을 비롯해 수많은 소설을 썼던 박완서 선생은 삶의 후반에 큰 아픔을 경험한다. 사랑하는 아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공부를 잘했고, 성격도 좋아서 의사가 되어서도 봉사도 잘하는 훌륭한 아들이었다.


한 번은 아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기는 방사선과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왜 하필이면 사람들에게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방사선과 의사를 하려고 하느냐고 묻자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다 싫어하니까. 제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그만 세상을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그야말로 생때같은 아들이 떠났을 때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박완서 선생이지만 믿음이 흔들렸다. 신에 대한 원망이 속에서 터져 나왔다.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 하나님,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늘 그러셨듯이 아무 말도 없으셨다. 하나님에게 질문을 던진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거는 이래서 그렇고 저거는 저래서 그렇다고 설명을 하시지는 않는다.


선생은 침묵하고 있는 하나님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다. 그때 박완서 선생이 애태우며 하나님에게 한 기도가 이렇다. '하나님, 한 말씀만 하소서.' 도대체 자기한테 왜 이러는지 딱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 속에 계셨다. 선생은 그의 책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이렇게 토로한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때 나는 몇 날 며칠을 밤이나 낮이나 주님을 찾아 대들고 몸부림쳤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한 말씀만 하시라'고 애걸복걸도 해보았다. 그러나 주님은 끝내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어쩌면 나직하고 그윽하게 뭐라고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늦게 난 철처럼 슬며시 왔다.'


'만일 그때 나에게 포악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분 조차 안 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저 만만한 건 신이었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殺意), 내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나는 신의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무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았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하는 선생을 지켜보던 이해인 수녀가 경북 왜관에 있는 수녀원에서 같이 지내자고 해서 선생은 그곳에 가게 된다. 선생은 수녀원에 가서 수녀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마음속의 고통을 이겨내려고 했다. 그렇다고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고통이 어디 장소의 문제던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거동이 어려운 중증 노인 환자들을 돌보던 수녀 한 명이 한 환자의 용변을 받아서 그 용변 통을 들고 나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하는 일에 비해 수녀의 얼굴이 너무 환했다. '냄새난다고 외면할 거 같은데 저분은 어떻게 저렇게 표정이 밝을 수 있을까?' 낯선 충격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후 하나님에게 고통의 이유를 알려달라고 묻던 질문이 바뀌었다. '나는 왜 그런 불행은 나와 무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마치 오지 말아야 할 손님처럼 노여워하지만, 나한테 왜 이런 불행이 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는가를 되묻게 되자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고 깨닫게 된 것이다.


얼마 후 미국에 사는 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는 이국의 낯선 환경에서 언어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 후 다시 듣게 된 모국어, 글을 쓸 수 있다는 희망... 그런 일을 겪으면서 선생은 점점 회복되어 간다. '내게는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가?' 하는 질문, 이게 바로 <욥기>가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흠잡을 데가 없는 바른 사람이었다. 그 기준으로만 본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 했다. 실제로 그는 다복함을 누리며 잘 살았다. 그러나 그는 뜻하지 않은 고난을 겪는다.


그때 그는 하나님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제 죄가 무엇인지 일러주세요.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지 알려주세요' 그러나 침묵하시는 하나님, 그러다가 욥 앞에 나타난 하나님은 욥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반문하신다. "내가 세상을 만들었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이런 큰 질문 앞에 욥은 할 말을 잃고 만다. 유구무언. 내가 이 세상과 피조물들을 만들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세상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 생각일 뿐, 하나님 앞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고통당하는데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계신다고 해도 그분은 선한 분이 아니야. 선한 분이라고 해도 전능하신 분은 아니야.' 이렇게 단정해 버릴 수도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다.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내 이해를 넘어선 어떤 일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취되어 가고 있다고 신뢰하는 것, 그것이 믿음인데, 이해할 수 없는 힘든 상황에서는 그런 믿음을 갖거나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믿음을 지키기 어렵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에 매달린 순간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한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침묵하시는 하나님. 예수는 죽음 앞에 선 마지막 순간, 이렇게 다시 기도한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기도의 내용이 바뀐 것이다. 예수님은 당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믿음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어도 거기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니 결국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임을 굳게 신뢰하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 또한 믿음의 여정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버릴 것이, 헛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하나님을 비난하거나 원망하고 심지어 부인하는 시간마저도 믿음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이런 고백이 있는가. 이런 믿음이 있는가. 다시 박완서 선생의 고백이다. 이 고백 속에 구원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주여,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다 왜 이렇게 진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습니까."




"어린 수녀님이 속세의 친구에게 하는 소리가 문득 내 관심을 끌었다.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얘기였다. 남동생이 어찌나 고약하게 구는지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왜 하필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 비관도 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엔 속 썩이는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 동생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되란 법이 있나?' '내가 뭐관대...'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동생과의 관계도 호전이 되더라고 했다.


'왜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 와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면 안되나?'는 간발의 차이 같지만 실은 사고의 대전환이 아닌가. 나는 신선한 놀라움으로 그 예비 수녀님을 다시 바라보았다. 내 막내딸보다도 앳돼 보이는 수녀님이었다. 저 나이에 어쩌면 그런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왜 하필 내 아들을 데려갔을까?라는 집요한 질문과 원한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데려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로 고쳐먹을 수만 있다면, 아아 그럴 수만 있다면. 구원의 실마리가 바로 거기 있을 것 같았다."


<박완서 _ 한 말씀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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