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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14. 2022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는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어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읽으면서 눈에 띈 부분, '~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는~' 특별히 주목할 부분이 아니었다.


죽은 볼콘스키 공작의 건축기사이자 말벗이었던 미하일 이바니치, 그는 공작이 죽자 오랜 친구를 잃은 슬픔으로 공작이 살던 집 근처에서 은거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공작이 생존해 있던 시절, 잠깐 등장하고 오랫동안 언급이 없다가 성 니콜라스 축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일 때 이렇게 잠깐 언급된다. 그는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도 아니다.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가 이제는 은퇴한 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생'과 따라오는 것이 '조용히' 그리고 '노인'이다. 젊은 사람에게 조용히 여생을 보낸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여생을 보낸다'는 영어로 'live a quiet life for the rest of one's days' '조용히'라는 말과 매치되어 있으니 여생은 조용히 보내는 거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겠다. 한편 '여생을 즐긴다'는 말이 있지만, 내가 읽었던 소설에서는 그 표현보다는 '조용히 여생을 보낸다'는 말이 훨씬 더 많았다.


이 말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은퇴해서 조용히 남은 생을 살아간다는 의미겠지만, 마치 이제는 쓸모 없어진 스스로를 어딘가에 유폐시킨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듯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 시간이 누구에게나 오겠지만 그때 그렇게 조용히 무력감에 빠져 마지못해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삶을 마지못해 살아내야 한다면 그것만큼 지겹고 힘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마치 주말이 되었는데 아무 할 일이 없어 소파에서 빈둥거리며 TV를 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한 번이면 몰라도 오랜 기간 동안 그래야 한다면? 아, 세월이 덧없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젊을 때는 삶에 활기가 넘친다. 중년을 넘어가도 지치지만 않는다면 여전히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노년에 이르면, (노년이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정년으로 치면 60세를 넘긴 나이일 것이다) 그때부터 하던 일에서 물러나 특별한 일 없이 최소한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


짧지 않은 기간, 나이는 들었고 누구도 찾지 않는 그래서 자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어떤 마음이 들까.


일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갖기 위해 각종 시험을 통과해서 자리를 잡으면 30대 초반, 정년을 기준으로 30년 정도를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나머지는 준비 기간이자 마무리 기간이라는 말이다. 앞으로 100세 시대를 산다면 그 시기를 제외하고 생의 대부분을 별다른 것을 하지 않고 보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취미생활이나 무언가를 하면서 여생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조차도 70세가 넘어가면 건강 문제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살아가야 하는 시기가 오게 마련이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 순간이 되면 여생을 '조용히'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세월의 의미와 더불어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지금도 남들보다 조용히 사는데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더 조용히 살게 되지 않을까. 문태준 시인의 칼럼 <불볕더위 여름날을 살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여름날을 살면서 우리의 마음이 조금은 느긋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지은 책 <로사르믹제>에는 ‘가라앉음’과 ‘들뜸’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책에서는 가라앉음을 '몸과 마음이 무겁고 유연성이 없게 하며 마음의 대상을 명확하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이라고 설명하고, 들뜸은 '탐욕의 마음으로 마음이 대상에 머물지 않고 흩어지게 하는 마음작용'이라고 풀이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상태를 떠나 평정한 마음이 돼야 한다고 설한다. 평정은 '마음을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이라고 해석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요즘처럼 푹푹 찌는 여름날에는 이러한 평정한 마음가짐이  절실하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생겨날  있는 짜증과 분노, 냉대와 하대(下待), 외면과 뻣뻣함, 산만함, 흥분, 과욕 등을  다스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오후, 나는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면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지나치게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이런 때일수록 미래를 염려하기 전에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평정을 찾을 수 있을까.


평정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울하다면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사람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것이고, 불안하다면 미래를 앞당겨 미리 살고 있는 것이다. 모두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시간들이다.


오직 현재만 내가 통제할 수 있으니 현재에 충실하는 것만이 집착과 불안에서 벗어나 평안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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