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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31. 2022

한나와 브닌나

성경에는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모세, 다윗처럼 역사를 바꾼 위대한 인물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등장한다. 장점이 있다고 해서 그들의 단점을 숨기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는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 중에는 뜨거운 체험을 하거나 어떤 계기가 있어 신앙이 깊어진 사람들도 있다. 그 결과 방언을 말하기도 하고, 드문 일이지만 예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아직 소위 말하는 영적인 체험이나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믿음이 별로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도 굳이 찾자면 체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성경이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참 대단한, 인간의 힘으로 쓸 수 없는 책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감히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실존과 그분의 마음을 느끼고 있다. 나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자신이 창조했지만 버릴 수도 없고 끝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인 나를 사랑하는 그분의 마음을. 


성경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해 가감 없이 언급한다. 불편한 부분도 있고 차마 눈뜨고는 읽기 어려운 장면들도 있다. 


보통 경전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숭배하기 위해 미화하거나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은 말하지 않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런 점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다. 

오늘 성경에서 한나(Hannah) 이야기를 읽었다.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 그의 어머니가 바로 한나이다. 한나는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인 엘가나의 아내였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한나이고 또 다른 한 명이 브닌나(Peninnah)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엘가나는 제사를 드리는 날에 나오는 제물을 한나에게는 갑절을 줄 정도로 브닌나보다 한나를 더 사랑했다. 


그러나 한나는 늘 괴로웠다. 자식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브닌나가 그녀를 심히 무시하고 괴롭혔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 한나는 왜 브닌나가 자기 옆에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브닌나는 한나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한 도구였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브닌나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한나는 괴로워서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이를 본 엘가나가 한나를 위로한다.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 않으려 하오? 왜 늘 그렇게 슬퍼만 하는 거요? 당신이 열 아들을 두었다고 해도, 내가 당신에게 하는 만큼 하겠소?"


그러나 남편의 위로는 인간적인 위로일 뿐, 그녀는 여전히 괴롭고 힘들었다. 어느 날, 한나는 성전을 방문해서 괴로운 마음에 울면서 하나님께 매달린다.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의 이 비천한 모습을 참으로 불쌍히 보시고 저를 기억하셔서 저를 잊지 않으시고 저에게 아들을 허락하시면, 저는 그 아이의 한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이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한나를 기억하셔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사무엘이다.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젖을 뗄 때까지 키우고 젖을 떼자 하나님에게 서원한 대로 엘리 제사장에게 보낸다. 


아무리 서원했다고 해도 어렵게 낳은 귀한 아들과 헤어지다니, 쉽지 않은 결단이다. 버림으로써 얻는 것, 한나의 믿음이 빛나는 순간이다. 사무엘상 2장에는 한나가 이에 감사하며 드린 <한나의 기도>가 나온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평범하고 비천한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하물며 한나의 기도도 들어주셨는데, 우리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다만 그 시간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다. 응답도 마찬가지다.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전제가 붙는다. 그러니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그 말조차 하나님은 들으시기 때문이다. 기도했으면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응답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역시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는 약속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모세 역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죽고 말았다.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 역시 비참하게 참수형을 당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브닌나가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한나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한나는 아픔과 고통을 통해 더 성숙한 삶을 살았다. 사무엘을 얻은 것도 귀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더 귀한 것을 주시기 위해 그 어려운 기간 동안 한나와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신 것이다.


무엇보다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로 성경에 남아 우리에게 지금까지도 교훈을 주고 있지 않는가. 서구에선 예전이나 지금이나 딸을 낳으면 Hannah라는 이름을 많이 붙인다. (참고로 Hannah는 '은혜'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한나'라는 이름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을지도 모른다. 


한나는 그 후 사무엘 외에도 세 아들과 두 딸을 낳는 복을 누렸다(삼상 2:21). 반면 브닌나는 한나의 이야기 초반에 잠깐 언급될 뿐, 그 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잊힌 것이다. 사무엘이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던 것은 한나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이제 잘 알고 있다. 그 사무엘이 선지자로 있으면서 이스라엘을 어떤 위기에서 구했는지도 알고 있다. 믿음은 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마치 보는 것같이 믿는 것이다. 한나처럼 말이다. 


지금 괴로운가. 인생의 고비에서 절망하고 낙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한나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어떨까. 한나의 고통과 아픔이 나중에 기쁨으로 승화되었으니, 우리가 지금 겪는 이 아픔과 고통도 언젠가 하나님 안에서 선한 뜻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걸 '흔들림 없이 끝까지'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우리가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나님은 '목적'이라고 부르신다. 그분의 목적은 지금 내가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평안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된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_ My Utmost for High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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