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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01. 2022

나의 존재 이유는

김진영 / 아침의 피아노

바울은 옥중 편지에 썼다.


"내 마음을 고백하자면 저는 죽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 소망을 뒤로 미룹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언젠가 강의에서 말했었다. 나를 위해 쓰려고 하면 나 자신은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그러나 남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나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고.

죽기를 원한다니? 얼마나 사는 게 고통스러웠으면 저렇게 말할까. 더 놀라운 것은 뒷말이다. 죽는 것이 낫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니 당장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회심한 후 천국을 사모했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려고 애썼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았다. 나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그것도 감옥에 갇힌 극한 상황 속에서 그는 당연한 듯 말하고 있다. 충격이었다. 


이 글은 작고한 철학자 김진영의 유고집 <아침의 피아노>에 나오는 글이다(바울의 옥중 편지는 성경이 되었으니 성경이 출처라고 할 수 있다). 바울 역시 죽음을 앞두고 이 말을 했고, 김진영 교수 또한 암 투병 중 죽기 직전까지 이 글을 썼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진실해진다. 어찌 회한이나 불만이 없겠는가. 시한부 인생, 우린 모두 시한부로 살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망각한다. 애써 외면한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언젠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과연 쓸모 있는 존재인가. 내가 없더라도 세상은 잘 돌아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 삶에 지쳐 나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였다.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경제적인 이득이 되었든, 내 배경을 과시하고 싶었든 내가 선용하면 될 터이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살아가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내 필요에 따라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말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다고,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사회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나를 위함이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들은 곧 허공으로 사라질 뿐 어떤 울림도 주지 못한다. 차라리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다. 


바울 사도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삶이 주는 어려움, 고통을 통해 예수를 만난 후 그를 휘어 감고 있던 시선 자체가 바뀌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한동안 앞을 못 보고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했으니까. 충격적인 상황을 겪어야만 비로소 고쳐지는 우리의 시선과 삶의 자세, 인간은 얼마나 완고한가. 


고통은 내 시선을, 삶의 방향을 바꾼다. 바울의 옥중 편지는 성경의 일부가 되어 지금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그의 숭고한 삶 역시. 고난의 유익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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