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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06. 2022

고독하면서도 고독하지 않은

블로그에 처음 글을 올린 것이 검사를 그만둔 2019. 8. 무렵이었고, 공개적으로 글을 쓴지도 어언 3년째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생각나는 대로 대충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고 있다.


특히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할 때, 글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아는 게 참 없구나.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는데. 아, 여전히 사색이 부족해. 내 문장은 왜 이렇게 거칠고 별로지. 등등' 한마디로 나는 내 글에 실망할 때가 많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물며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작가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창작의 고통과 매일 싸워야 할 테니까. 무엇보다 글은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써야 한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외롭고 고독한 일이다.


외롭다고 생각되는 순간, 나는 글을 쓰면서 어느 순간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곤 했다. 글쓰기는 고독하면서도 고독하지 않은 일임을 글을 쓰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처럼 외로울 때 이렇게 뭔가를 쓴다.




위대한 작가들은 글도 열심히 썼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었던 사람들이다. 글을 쓰는 시간을 쪼개서 무언가를 읽고 자극을 받았던 것. 아는 것이 없으면 생각이 없으면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어렵다. 문체만 유려(流麗)한 것이 아니라, 뭔가 의미 있는 내용까지 담겨야 좋은 문장이다. 중요한 것은 물론 그 '내용'이겠지만.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인 필립 로스(1933 - 2018)는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반복이 되풀이되는 일이라고. 실제로 모든 작가에게 필요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거의 변하지 않는 일을 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능력이라고.” 


끈기 있게, 자신 안에 들어있는 생각의 실타래를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숨겨진 나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필립 로스 같은 위대한 작가도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고 하니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1. <이런 이야기>, 알렉산드로 바리코

2. <Stoner>, 존 윌리엄스

3. <열세 걸음>, 모옌(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지난 주말 서점에 들러 산 몇 권의 책, 추천평이 인상적이다.


나조차 내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누군가의 깊은 내면을 따라가 보는 일은 특별한 위로를 준다.” (최은영 소설가, ‘스토너’ 추천평)


"그리하여 독자들은 마지막 순간 그 길을 알게 된다. 바깥에 있으면서 동시에 안에 있는 그 길을." (라 레푸블리카, '이런 이야기' 추천평)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9 초순에 태풍이라니, 역시 가을은 쉽게 오지 않나 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바라면 바랄수록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원하는 것은, 비록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아름답게 오는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면 가을이 깊어질 것이다.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를 사게 된 건 추천평 외에도 책을 훑어보다가 눈에 들어온 이 문장들 때문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생각했다. 모든 삶은 무한한 혼돈이며 그것을 단 하나의 완전한 형상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은 더없이 정교한 예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책들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눈매나 들판에 홀로 선 나무들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에 감동하는지를." <이런 이야기, 450p>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안 그래.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는 시간은 그 긴 세월의 작은 부분일 뿐이야. 다시 말해서 자기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시기에만 진정으로 살았다 할 수 있어. 그런 시기에 사람들은 행복해. 나머지 세월은 기다리거나 추억하는 시간이야.” <이런 이야기, 264p>




옷만 멋지게 입는다고, 몸매를 날씬하게 관리한다고, 값비싼 향수를 뿌린다고 나이가 커버되는 건 아니다.(물론 전혀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마음에 어떤 게 담겨있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삶에 어떤 감동이 있는지 아는 것 역시 멋진 옷만큼이나 중요하다.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쓴 글은 향기롭다. 그 향기로 우리는 세월을 극복할 수 있는 거다.


하여, 나는 나이 즉 세월을 건너뛰기 위해 책을 읽을 것을 추천한다. 옷은 낡으면 버려야 하고 몸은 나이가 들면 쇠퇴하지만, 책을 통해 정신에 새겨진 지혜는 죽는 순간까지 영원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인지? 우리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런 삶의 근본적인 질문은 시대를 관통해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좋은 책이 세월을 견디고 지금까지 우리 곁에 있는 것도 바로 그 질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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