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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03. 2022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어제는 둘째와 오랜만에 문자를 했다. 이젠 훌쩍 커버린 아들,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몰라 문자를 남겼다. 한동안 답이 없었다. 뒤늦게 온 문자, 운동 중이어서 문자를 보지 못했다고.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간단히 용건을 확인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책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사족을 달았다. 순간 후회했다. 괜한 잔소리를 했나? 대학생이니 알아서 잘할 텐데.


대학 2학년, 대학 생활의 묘미를 알 시기, 재밌는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터.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시기다. 나도 그랬다. 책을 틈틈이 읽었지만 그렇게 집중하지 못했다. 그때 읽었던 책들이 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으니.


오은 시인은 말한다. "기억은 언뜻 과거의 인상을 길어 올리는 일처럼 보이지만, 도로 생각해낸 것을 가지고 미래를 다짐하는 일로 확장될 수 있다. 지난번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다음번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이 기약이 될 때, 미래는 비로소 구현된다."


'지난번'을 돌아보면 후회스럽다. 앞으로 다가올 '다음번'을 기약하는 수밖에. 그래서 나처럼 허송세월하지 말라고 그런 문자를 보냈던 거다. 안 그래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고 한다. 무슨 책인지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문자가 길어지면 그것도 피곤한 일이고.

갑자기 허전함이 밀려온다. 책을 보려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TV를 켜고 눈에 띄는 영화를 골랐다. 덴젤 워싱턴 주연의 <The Equalizer, 2014>. 내 눈길을 끌었던 장면은 늘 책을 읽고 있었던 그의 성실함이었다.


주인공 로버트 맥콜(덴젤 워싱턴)은 전직 요원 출신으로 지금은 마트 직원으로 조용히 살아간다. 시계를 맞춰놓고 그에 따라 움직일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그에게는 불면증이 있다. 새벽 2시, 잠이 오지 않으면 책 한 권을 들고 자주 가는 카페로 향한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그는 아내가 남기고 간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100권’을 모두 읽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그는 잠이 오지 않는 시간, 책 그것도 지루한 고전을 왜 읽고 있을까. 왜 소위 범생이처럼 자로 잰 듯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지루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동안의 삶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이제는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가. 반대가 아닌가. 조용하고 평범한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뭔가 재밌고 짜릿한 일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지. 그러면서 자식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하다니,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는가. 그는 책을 읽는 것을 남은 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데, 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마지못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다. 나태하고 무기력한 지금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다는 건지, 특별히 넘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삶인데도.




나도 지금 고전 중에 고전을 읽고 있다. 삶의 의미와 인간의 도덕적 완성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담고 있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총 5권짜리라 선뜻 잡지 못하고 미뤄두었던 책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의 책을 읽고 있다니. 그것도 전쟁 소설을.


책 앞부분에 바실리 공작에게 반문하는 아네트의 말이 나온다. "죽으러 가려는 거예요. 말씀해 주세요. 대체 뭐 때문에 그런 끔찍한 전쟁을 해야 하는 건지를." 내가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도대체 왜 전쟁을 하는지, 꼭 전쟁을 했어야만 하는지를. 이 소설도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권 중에 하나이다.


소설을 읽는다고 인생의 답이 쉽게 찾아지는 건 아니다. 지금 읽고 있는 '전쟁과 평화'도, 맥콜이 읽고 있는 '노인과 바다'도. 어쩌면 책을 읽는 건,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이 망망대해에서 변변한 도구도 없이 청새치를 잡으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무용해 보이는 일일지 모른다.


노인은 꿈에 그리던 청새치를 잡았지만 결국 상어에게 빼앗기고 만다. 아무런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겁지만 결코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산티아고처럼, 죽기 전에 100권의 책들을 모두 읽는다고 해서 뭔가 눈에 띄는 것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노인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도 정직한 노동 그 자체만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또한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를 배우고 있는 거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저러나 죽기 전에 100권의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맥콜처럼 성실함만이 답일 것이다.

독서에서 적(敵)이란 인생 그 자체다.

질투, 경쟁이 삶을 뒤흔들고

독서를 통한 자기 성찰에서 멀어지게 한다.

독서는 자기애(自己愛)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머쥐는 행위이다.



<Émile Faguet _ 단단한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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