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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29. 2022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이유리 /브로콜리 펀치


어떤 책은 읽으면 오래 기억되는 반면, 어떤 책은 읽고 나면 금세 기억에서 사라진다. 가볍게 읽은 단편, 특히 스토리가 평범한 소설이 그렇다. 문장이 아름답거나 줄거리가 특이하다면 뭔가 기억에 남았을 거다.


반면에 서사가 긴 장편소설은 기억에 오래 남는 편이다. 장편이다 보니 오래 읽어야 하고, 줄거리 또한 스케일이 클 테니 기억할 부분도 많을 게다. 대개 장편소설은 고전이 많은데, 번역도 생소하고 문장 또한 낯설다. 작가의 역량에 따라 어려운 철학이나 심리학적 소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거기다가 그 시대 역사를 배경으로 삼는다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건 당연하다.


책을 읽기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이나 사조까지 꿰뚫고 있어야 하니 읽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책 속에서 헤매는 시간만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에 비례해서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다.



오래 만난 사이일수록 그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건 당연하다.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우리 관계 역시 소설을 많이 닮았다. 그 사람과 장편을 썼다면 함께 한 시간들을 오래 기억할 것이고, 단편에 그쳤다면 벌써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장편이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함께 했던 추억들을 속속들이 기억하기 어렵다. 세월이 사람의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기억을 일부러 지우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에 실패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한다. 이별은 원망과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는 두고두고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죄책감까지 더해지면 헤어졌지만 헤어진 게 아닌 상태가 한동안 지속된다. 마음속에서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고, 지우려고 노력하는 만큼 더 기억은 생생해지고. 이 모순 앞에서 점점 더 힘들어진다.


어쩌면 살기 위해서  기억을 지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서   없었을 테니까. 기억한다고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아물  같지 않은, 가슴에  흉터를 남긴 상처도 잊으려고 노력하는 만큼 어느 순간 기억에서 희미해진다. 새로운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면  시간은   빨라질  있다.


아무튼 기억에서 사라졌다면 나름 힘든 노력의 산물이라는 거다. 시간을 뛰어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소설 속의 두 남녀는 이런 내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버렸다. 단편도 얼마든지 가슴에 깊이 남을 수 있다는 것까지도.


이유리 작가의 소설 <브로콜리 펀치>에 나오는 단편 <손톱 그림자>에는 사랑하는 남자친구(용준)가 교통사고로 죽고 5년 만에 자신(수정)의 손톱으로 빙의해서 나타나 그동안 못다 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어쨌든 저는 손톱이라면,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수정 씨 주변에 제 손톱이 아직도 떨어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거기에 어떻게 한번, 안 되면 말겠지만, 하는 생각으로 들러붙어보았어요.

......

"그냥 그랬어요.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잊으면 안 된다고도 생각했는데 잊었어요."


잊었군요.


"한 번에 다 잊은 건 아니고 조금씩, 그러니까 예를 들면 용준 씨가 찻잔이었다고 치면요. 깨지고 나서 반짝이는 부스러기까지 모두 손끝으로 찍어 모아서 갖고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근데 그걸 점점 잃어버리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큰 조각들밖에 안 남았어요. 그 조각들도 원래는 꺼낼 때마다 손이 베일만큼 날카로웠는데, 갈수록 각을 잃고 뭉툭해져 가고."


알아요. 알 것 같아요.


"원망하려면 해요. 분하잖아요. 분할 거예요. 그렇게 사랑한다고 잊지 않겠다고 해놓고선 지금..."


수정 씨는 내가 죽었을 때 나를 원망했나요.


"원망했어요. 그렇지만 곧 원망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냥 보고 싶다고만 생각했어요."


나도 같아요.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앞으로도 어딘가에 계속 존재한다면, 나도 수정 씨처럼 수정 씨를 잊게 될 거예요.




용준이 죽은 원인 중에 하나가 수정의 실수와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그걸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는 죽었고, 수정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힘들어하다가 이젠 다른 남자를 만나 잘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자신의 손톱으로 나타난 전 남자친구, 그는 죽어서도 수정을 잊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죽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웠지만. 참을 수 없이 비좁고 캄캄한 곳에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 가고 싶은 곳도 오라는 곳도 없어서 그냥 거기 그림자로서 존재했어요. 그저 존재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되지 않고 그저 가만히.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수정 씨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정 씨 말고는 달리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고 그다지 아쉬울 것도 없는 삶이었으므로 오직 수정 씨만 생각했어요.'


죽은 사람은 산 자를 잊지 못하고 산 자는 죽은 자를 잊는, 아니 잊어야만 하는 현실. 아무튼 그의 고백은 수정의 잠잠하던 마음을 흔든다. 그때 그 상처까지도. 수정도 오랫동안 그를 잊지 못하고 힘들어했으니까. 그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죄책감까지 더해졌으니 많이 힘들었으리라.


그러나 시간은 날카로웠던 그녀의 감정을 갈수록 각을 잃게 만들고 상처는 어느 순간 아물어 딱지가 앉았다. 용준이 수정과 다시 시작할 수 없듯, 지나간 사람과는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세월이 흘렀고 서로의 상황이 그때와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그 시절의 내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죽어서도 못 잊고 그 사람의 손톱으로 빙의해서 나타났을까. 그렇게 나타나 보니 그녀는 다른 남자와 살고 있고, 행복해하는 그녀, 죽은 자니 감정이 없을까. 아니 없어야 할까.


교보문고에서 책 제목에 끌려 우연히 펼친 소설, 나는 그곳에 서서 이 단편을 꼬박 다 읽었다. 읽는 내내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잊고 다른 남자랑 잘 살고 있는 옛 여자 친구 앞에 굳이 다시 나타나야 했을까. 수정도 그렇지.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들을 해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그녀의 남편이 보인 반응은 이해는 가지만 유령인데 저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용준이 나타난 것은 수정을 위해서였다고. 자신 때문에 용준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를 잊지 못하고 있는 수정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고. 그런 의미에서 용준이 손톱으로 나타난 것은 수정의 '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죽은 용준에게 전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용준은 수정을 사랑하기 때문에 손톱이라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빙의해서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수정의 부담을 덜어 준 후 다시 그림자가 되어 수정을 총총히 떠나간다. 수정 역시 이젠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빛 속을 걸어가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내 등 뒤로 무언가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길게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 것인지 그냥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는 계속 달렸고 그 그림자는 꼬리처럼 한동안 길게 길게 늘어나며 가늘어지고 가늘어지다가, 어느 순간 마침내 톡 하고 끊어졌다.'


용준은 그림자처럼 사라졌지만 보기 드물게 좋은 유령이었던 셈이다. 자기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억울하다고, 너만 행복하게 살면 다냐고. 그는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수정을 위로한다. 그녀를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이다.


수정 역시 용준을 보내고 돌아오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다시 나타나 준 용준과 잠깐 보낸 시간이 용준을 직접 애도하는 시간이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난 사랑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기도 했다는 것을. 상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서서히 치유되는 것임을. 잊고 싶었지만 앞으로도 그립지 않은 날은 없을 것임을.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허연 _ 오십 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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